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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술방시대②] 현대인의 정서 담긴 술, 방송도 마신다

[기획|술방시대②] 현대인의 정서 담긴 술, 방송도 마신다


사람들은 단지 취하기 위해서만 술을 마시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힘든 하루를 털어내기 위해 혹은 미각의 풍부함을 느끼기 위해 우리는 술을 마신다. 이 외에도 음주문화가 성행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미디어는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대중의 니즈(needs)가 모여 만들어낸 트렌드를 따르기 때문이다. 특이한 점은 최근 미디어가 술의 단순한 노출을 뛰어넘어, 그 안에 담긴 정서를 꿰뚫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방송은 적극적으로 술을 활용하고 있다. 술이 주는 솔직한 이미지 등 표면적인 효과는 물론, 우리가 술을 왜 마시고 어떻게 즐기는지 감성적인 영역을 건드리고 있다. 이는 대중의 흥미뿐만 아니라, 공감과 소통을 이끌어낸다. 단편적인 언급에서 더 나아가 술을 주제로 하거나, 타이틀에 ‘술’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tvN 드라마 ‘혼술남녀’는 삶에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혼술’을 다뤘다. 직장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서, 연애사업이 잘 안돼서, 그냥 혼자가 좋아서, 주인공들이 매번 혼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담아냈다. 때문에 혼술을 하는 각각의 사연과 기분은 다양하다. ‘혼술남녀’ 최규식 PD는 “사실 술 자체보다는 혼술을 하는 사람들의 정서적인 이유에 좀 더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시청자들이 ‘나도 혼술하고 싶을 때가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게 제작진의 고민이고 숙제”라고 말했다.
[기획|술방시대②] 현대인의 정서 담긴 술, 방송도 마신다


tvN ‘인생술집’은 혼술 주제는 아니지만, 맛있는 술과 안주가 주는 즐거움과 그 자리에서 나오는 소박한 재미를 의도했다. 신동엽, 탁재훈, 김준현 그리고 나중에 투입된 에릭남까지, 네 명은 게스트와 함께 실제 술을 마시며 진짜 술집에 앉은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지금은 많이 변질됐지만, 방송 초반 이들의 대화는 여느 토크쇼에서 볼 수 있던 것과 조금 다르다. 유준상은 뮤지컬 공연 홍보대신 자신이 노래하는 이유에 대해 더 말하고 싶어 한다. 김성균은 작품에 들어가지 않은 애매한 때인데도 불구하고, 자처해서 출연했다. 일반인이 출연할 수도 있다. 티빙 홈페이지에서는 사연을 받아 출연진을 모집하고 있다. 다함께 목 놓아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술에 취한 듯 엉뚱한 작사를 한 후 마음껏 웃기도 한다. 심지어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는 모습도 여과 없이 전파를 탄다. 깜짝 게스트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은 우리네 술자리에서 친구가 중간에 합류하는 듯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인생술집’은 제목 그대로 술자리에서 나오는 진솔한 모습을 주제로 다룸으로써 ‘연예인’이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을 담아낸다. ‘인생술집’ 오원택 PD는 취중진담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했다. 꼭 프로그램명에 ‘술’이 들어가지 않아도 다양한 방식으로 술의 정서를 풀어내는 경우는 많다.
[기획|술방시대②] 현대인의 정서 담긴 술, 방송도 마신다


MBC ‘나 혼자 산다’는 라이프스타일을 다루기 때문에 각자 다른 모습으로 술을 즐기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나래바’로 유명한 박나래는 멤버들을 초대해 다양한 술을 맛보게 해준다. 이국주, 박정현, 박진주 역시 절친들과 함께 늦은 밤 술자리를 가진다. 이렇게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은 술을 마시며 달아오르는 흥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박나래, 한혜진, 이국주 등은 전날 술을 마시며 ‘달린’ 뒤, 숙취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숙취의 고통만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게 또 어디 있을까. 시청자들은 한껏 흐트러진 연예인의 모습을 보며 술을 마시는 과정뿐만 아니라 ‘술자리의 끝’까지 함께한다. tvN ‘신혼일기’ 역시 술의 리얼함을 활용했다. 안재현과 구혜선은 함께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데, 여기서 술은 실제 부부이기에 나올 수 있는 행동과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술기운이 오른 구혜선이 주정을 부리는 모습도 시청자들 눈에는 귀엽게 보인다. KBS2 ‘배틀트립’에서 김지민과 김민경은 술을 목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일본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종류의 술을 소개하면서 당장 그곳으로 가고 싶게 만든다.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 김건모는 국내를 돌며 지역 특산 소주를 맛보는 ‘술 기행’을 떠난다.
이는 술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한편으로는 모든 방송이 술의 깊은 곳까지 다루는 것은 아니다. ‘미운 우리 새끼’에서 김건모가 어마어마한 수량의 소주병으로 트리를 만들고, tvN ‘신서유기’에서 고량주 한 병을 제한 시간 안에 마셔야 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에서는 자극적으로 느껴질 뿐이며, 그 어떤 감성도 느낄 수 없다. [기획|술방시대①] 브라운관 속 ‘술방’이 등장하기까지[기획|술방시대②] 현대인의 정서 담긴 술, 방송도 마신다 /fnstar@fnnews.com 이소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