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20살 연하의 같은 아파트 주민이 반말로 시비를 걸어오다 갑자기 다른 사람을 발견하고는 존댓말을 쓴 상황에서 '당신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의미의 영어 비속어를 말했다면 모욕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이모씨(61)가 검찰이 자신을 모욕죄로 기소유예한 것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기소유예 처분은 이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어서 이를 취소한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결정했다고 6일 밝혔다.
이씨는 자신이 아파트 뒤편 화단에 물을 주는 것을 계기로 주민 A씨(41)와 갈등을 겪던 중 지난해 4월께 다툼이 발생했고 이씨는 A씨를 폭행죄로, A씨는 이씨를 무고죄로 각각 고소했다. 고소사건이 진행 중이던 같은 해 5월 일요일 오후 무렵 아파트 화단에서 우연히 이씨와 마주친 A씨는 20년 연상인 이씨에게 반말로 계속 시비를 걸며 따라오다가 멀리 쓰레기분리수거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파트 경비원을 발견하자 갑자기 이씨에게 존댓말을 했다.
이씨는 A씨의 갑작스런 태도돌변에 어이가 없어 "you are fucking crazy"라고 말했다. A씨는 이씨의 이런 표현을 문제삼아 고소했고 검찰은 모욕죄로 기소유예 처분했다. 기소유예는 죄는 인정되지만 죄질.관련 전과 등을 고려해 재판에 넘기지 않고 선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씨는 "계속 반말로 시비를 걸던 A씨가 아파트 경비원을 보자 돌연 존댓말을 쓰기 시작한 상황이 어이가 없다고 느껴 영어로 혼잣말을 한 것에 불과해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검찰 처분에 불복해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이씨의 표현 중 'fucking'은 '대단히' '지독히' '매우' 등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고 'crazy'는 '미친' '정상이 아닌' '말도 안 되는'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면서도 "다만 경멸적 표현인지는 사전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표현을 하게 된 경위 및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헌재는 "이씨가 표현한 의미는 '당신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당신 정말 말도 안 된다' 정도의 의미로, 이씨가 고소인을 모욕할 의사가 있었다거나 해당 표현이 고소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경멸적인 표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씨의 영어표현을 들었다는 아파트 경비원의 사실확인서만으로는 당시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듣고 보았다는 것인지를 정확히 판단하기에 부족해 이씨의 행위에 공연성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도 어렵다"며 "법리오해에 기초해 이뤄진 기소유예 처분으로 이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덧붙였다.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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