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주가가 17년 전 '닷컴버블' 시대의 기록을 뛰어넘어 사상 최고치를 나타냈다. 실적향상 등 각종 호재가 겹쳤기 때문인데 업계에서는 IT 업종이 이제 거품 시기를 지나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에 따르면 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IT업종 지수는 9일 연속 상승해 19일(이하 현지시간) 전일대비 0.6% 오른 992.29를 기록했다. 이는 각종 닷컴기업들의 거품이 한창이던 지난 2000년 3월 27일(988.49)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거품 없는 성장...닷컴버블과 달라
S&P500 IT업종 지수가 주목받는 이유는 미 대형 기술주들의 성과를 재는 가장 순수하면서도 느린 척도이기 때문이다. 기술주들이 몰려있는 나스닥 시장의 경우 이미 2015년에 닷컴버블 기록을 추월했다. 비교적 최근에 IT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넷플릭스와 아마존의 경우 올해 주가가 각각 50%, 37%씩 뛰었지만 S&P500 지수에서 IT가 아닌 소비자재량지수에 들어간다. 올해 주가가 10% 이상 폭락한 IBM과 웨스턴유니온은 나스닥 실적에 포함되지 않지만 S&P500 IT업종 지수에 합산된다. 이런 지수가 올해 들어 23%나 뛰어 새 기록을 세웠다는 것은 그만큼 미 IT 업종이 성장했다는 의미다.
물론 덩치만 커진 것은 아니다. S&P500 IT업종 지수에서 주가가 주당순이익의 몇 배인지 나타내는 주가수익비율(PER)은 18일 종가에서 직전 1년간 순이익 기준 23.2배로 2000년 3월 27일(70.3배)에 비해 크게 낮았다. S&P500 지수 평균(22배)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는 그만큼 주가에 낀 거품이 과거에 비해 적다는 의미다.
기업 구성도 바뀌었다. 17년 전 상위 5대 기술주는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오라클, IBM이었으나 지금 미 IT 업계를 이끄는 우량주들은 애플,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 MS, 페이스북, 그리고 비자다.
미 시장조사업체 S&P다우지수의 하워드 실버브랫 선임 애널리스트는 "이 시장은 2000년대의, 아버지 세대의 시장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성과 특성들이 다르고 그때보다 실적이 훨씬 단단하다"고 덧붙였다.
■실적 내는 성숙한 시장에 투자자 몰려
FT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미 IT 업계가 보다 성숙해졌다고 진단했다. 미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현재 IT 업계가 보유한 현금은 8700억달러(약 979조원)로 추정되며 이는 비금융 미국 기업들의 전체 현금 가운데 47%에 달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S&P500 IT업종의 순이익 증가율이 올해 1·4분기에 전년 동기대비 18% 늘어났다며 S&P500 평균(14%)를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미 시장조사기관 팩트셋은 IT 업종의 2·4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대비 10.9%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IT 기업들은 이달 24일(알파벳), 26일(페이스북), 8월 1일(애플) 등 이달 중순부터 본격적인 실적발표를 앞두고 있다.
견실한 기업에는 돈이 몰리는 법이다. 다국적 시장정보업체 EPFR에 의하면 올해 미국 IT 업계에 유입된 투자금은 최소 90억달러로 추정된다. FT는 투자자들이 미 정부가 올해 초 발표한 세제개혁 및 사회기반시설 투자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으로 보고 정책 수혜주 대신 실적이 좋은 IT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모든 IT 기업들이 장밋빛에 잠겨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상장한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의 모기업인 스냅은 올해 1·4분기 실적 발표결과 약 22억달러의 손실을 내면서 5월에는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았다. 업계에서는 스냅의 사례를 지적하며 우버나 에어비엔비 등의 비상장 IT기업들이 상장을 미룰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 결과 투자자들은 IT 업종 이후의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분위기다. 미 경제전문방송 CNBC는 19일 보도에서 미 생명공학(BT)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며 지난 2년간의 부진이 무색해졌다고 전했다. BT기업 주가를 추적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아이셰어즈 나스닥 바이오테크놀로지 ETF는 19일 319.63으로 마감해 올해 들어 20.44% 급등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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