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보 관행 고쳐야 하지만 벤처에 대출 요구는 무리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26일 은행의 전당포식 영업을 비판했다. 최 위원장은 "모든 시중은행이 (과거 가계대출을 전담하던) 국민은행화됐다"며 "전당포식 영업행위라는 비판이 일리 있다"고 말했다. 금융계의 맏형인 은행으로선 수모가 아닐 수 없다. 졸지에 은행장들은 전당포 주인, 은행원들은 점원이 됐다.
최 위원장의 작심 비판은 근거가 있다. 외환위기 즈음 은행 대출에서 가계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밑돌았다. 이 수치가 지난해 43%로 높아졌다. 또 중소기업 대출 가운데 담보를 잡고 빌려주는 돈이 70%가량 된다. 요컨대 그동안 은행들은 땅 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수익을 올렸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사실 금융권 보신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도 이를 누누이 지적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틈 날 때마다 은행권 보신주의를 질타했다. 국정과제인 창조경제를 뒷받침하려면 은행 돈이 혁신 벤처.중기로 흘러가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기술금융'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러나 기술금융은 끝내 시늉에 그쳤다. 대통령과 금융당국이 한마디하면 움찔했을 뿐 은행들은 정성을 쏟지 않았다. 후임 임종룡 위원장 시절엔 기술금융이란 말조차 쏙 들어갔다.
은행도 할 말이 있다. 외환위기가 터지자 정부는 기업부채비율을 꽉 조였다. 돈을 꿔줄 곳을 잃은 은행들은 가계로 눈을 돌렸고, 정부도 이를 장려했다. 그 바람에 가계빚이 1300조원을 넘어 역대급 행진을 하고 있으나, 가계빚 눈덩이가 은행 탓만은 아니다.
행여 문재인정부가 상업은행을 벤처.중기에 밑천을 댈 '전주'(錢主)로 여긴다면 오산이다. 최 위원장은 "가장 바람직한 건 은행이 혁신 중소기업 대출 등 다양한 자금운용을 통해 수익을 넓혀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어쩔 수 없이 '기술금융 시즌2'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은행은 신생 스타트업의 기술력만 보고 돈을 빌려주는 곳이 아니다. 상업은행은 위험회피 본능이 있다. 대출대상을 깐깐하게 골라야 고객이 맡긴 돈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나서고 금융위원장이 채찍을 들어도 소용없다.
은행을 혁신 중기 대출 창구로 활용한다는 생각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은행더러 감 놔라 배 놔라 하던 시대는 지났다. 억지로 강요해봤자 시늉만 하다 끝날 공산이 크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벤처금융은 벤처캐피털이나 투자은행(IB)에 맡기는 게 정석이다. 미국에선 구글.페이스북.아마존 같은 혁신기업들이 줄줄이 나온다. 벤처를 키우려면 그에 걸맞은 투자 생태계부터 갖추는 게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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