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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에 듣는다] 트럼프를 뺀 G20의 하모니

[세계 석학에 듣는다] 트럼프를 뺀 G20의 하모니

지난 7일 밤 독일 함부르크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을 위한 베토벤 9번 교향곡 마지막 악장인 '환희의 송가'는 사해동포주의라는 완벽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G20 의장이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을 제외한 주변국들과는 베토벤의 정신을 구현하는 면에서 놀라운 진전을 이뤄냈다.

베토벤의 격정적 교향곡이 메아리치는 가운데 정상회의에서 불거진 불협화음은 오롯이 미국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트럼프는 형제애에 기대는 것을 싫어한다. 그는 인종과 종교 간 분화, 적대적인 이웃들, 상상조차 어려울 정도의 막대한 부와 기술적 기량 대신 급진 이슬람의 손에 쉽사리 붕괴될 것 같은 서구 문명의 이원론적 이미지 전파에 의지한다.

지휘자가 숨막히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이끌었지만 그날 밤의 진정한 마에스트로는 메르켈이었다. G20 정상들을 함부르크의 웅장한 새 엘프필하모니 콘서트홀로 불러들인 것은 얼마나 천재적인 발상인가. 이 콘서트 홀은 그 자체로 세계의 조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가장 위대한 세계주의 음악 작품의 영향이 깃든 건축물이다. 그날 밤 공연은 그 자체로 매우 의미심장했다. 베토벤의 독일은 히틀러가 만든 독일의 잿더미 위에서 다시 태어났다. 지금의 독일은 세계적으로 존경받고 평화를 사랑하며, 전쟁을 극단적으로 혐오하고, 민주적이며, 번영되고, 창조적이고, 협력하는 나라다.

동시에 베토벤의 천재성은 그의 조국 독일 또는 심지어 서구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 귀속된 것이다. 9번 교향곡에 들어간 쉴러의 시적 송가는 계몽주의의 진정한 범세계적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계몽주의는 유럽의 현상이었다. 그러나 이는 전 세계에 대한 자각이면서 또 개별주의와 국수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궁극적인 인식이기도 했다. 독일의 계몽주의는 이마누엘 칸트의 '영원한 평화'에 대한 염원으로 가득했다. 이는 또 개인의 변덕과 좁은 이해관계가 아닌 만국 공통의 법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격언들에 따라 행동한다는 '지상명령'에 기반한 것이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칸트 윤리에 대한 뻔뻔한 모욕이자 평화에 대한 위협이다. 파리기후협약에 관한 다른 나라들과 그의 단절은 지금까지 날것 그대로의 이기적 행동 가운데 가장 섬뜩한 행동이다. 이는 상당수 미국 기업의 목표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한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기후변화 결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스와 석유 시추, 심해 석유생산, 지속적인 석탄 채굴 같은 산업들이다. 코크산업, 콘티넨털 자원, 피바디 에너지, 엑손모빌, 셰브론 등이 이런 기업들이다.

이들 화석연료 기업은 트럼프에게 파리협약을 탈퇴하라고 촉구하는 공화당 상·하원 의원들의 선거자금을 대왔다. 이들이 고용한 공화당 정치인들은 전 세계 다른 나라 사람, 미래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동료 미국인들, 심지어 자신들 가족의 안녕까지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 모든 것에 우선하는 탐욕이다.

메르켈은 다시 한번 이성과 효율성의 보루임을 입증했다. 메르켈은 패닉에 빠지지 않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메르켈과 독일 그리고 유럽이 어떤 입장인지를 분명히 했다. 5월 말 주요 7개국(G7) 회의 이후 그녀는 유럽이 더 이상 미국에 온전히 의존할 수 없다는 점에 비통해했다. 그러나 막후에서 메르켈과 일처리에 능숙한 독일 외교관그룹은 그동안 G20에서 미국을 뺀 나머지 국가들과 합의를 이끌어냈다.

금요일 G20 정상들이 콘서트장으로 향할 때 그들의 셸파들(실무진)은 최종 문구를 논의하기 위해 남았다.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또 다른 나라들이 트럼프처럼 딴죽을 거는 건 아닐까. 공동성명이 모습을 드러내자 외교관들과 전 세계 기후활동가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G20 나머지 회원국 모두가 미국의 술책을 거부한 것이다.
공동성명은 단순하고, 적확했으며 기후변화에 관해 안심할 만한 것이었다. "다른 G20 회원국 정상들은 파리협정이 불가역적임을 밝힌다…우리는 파리협정에 대한 강한 의지와 완전한 적용을 위한 신속한 행동에 나설 것임을 재확인한다…."

콘서트가 끝났을 때 G20 정상들과 청중들은 오랫동안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날의 진정한 커튼콜은 베토벤, 칸트, 메르켈의 것이었다.

제프리 삭스 美 컬럼비아대 지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