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전력 남아돈다면서 공장 왜 세우나

탈원전해도 문제 없다더니.. 6년전 대정전 교훈 삼아야

전기가 남아돈다고 홍보하던 정부가 지난달 기업에 두 차례의 '급전(急電) 지시'를 내려 일부 생산라인 가동을 멈추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7일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실에 따르면 전력거래소는 지난달 12일 3시간, 21일 4시간의 급전 지시를 내렸다. 급전 지시가 떨어지면 정부와 약정을 맺은 전국 3000여개 기업은 전기사용량을 줄이는 대신 일정부분 보조금을 받는다. 2014년 도입 이후 3차례만 내려진 비상조치가 한 달에 두 번 동원된 것은 이례적이다.

정부는 전력수요 급증에 대비한 합법적 조치라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급전 지시는 전력예비율이 10% 밑으로 떨어지는 시점에 발동되는 게 일반적이다. 역대 최대 전력수요 기록을 세웠던 작년 8월 12일엔 공급예비율이 8.5%까지 떨어졌지만 당시 정부는 급전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지난달에는 공급예비율이 12% 이상으로 여유가 있었다. 정부가 탈원전으로 전력수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기업의 전력사용에 개입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급전 지시도 정부가 탈원전 홍보를 강화하려던 시점과 맞물려 의혹은 더 커진다. 지난달 29일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산업통상자원부 워크숍에 참석해 탈원전 홍보가 미흡하다고 질책했다. 이후 백운규 산업부 장관과 이인호 차관은 "탈원전을 해도 5년 동안은 전기요금 인상과 수급 우려가 없다"며 홍보전도사를 자처했다. 전력거래소도 발전설비예비율이 14년 만에 30%대를 넘어섰다고 홍보했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1년 9.15 대규모 정전 당시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4시간45분의 정전으로 전국에선 혼란이 빚어졌다. 신호 고장으로 도로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병원에서는 환자를 치료할 수 없었다. 금융거래가 멈추고, 기업들은 업무가 마비됐다.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갇히고, 횟집의 어류는 폐사했다. 첨단사회일수록 정전이 가져오는 피해는 상상 이상이다. 9.15 대정전의 원인 중 하나는 정부가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잘못 예측해 발전설비를 충분히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나마 지금 전력수급에 여유가 있는 것은 그 뒤에 발전소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이 휴가에서 복귀해 공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간 7일 최대 전력 사용량은 1주일 전보다 20% 넘게 급증해 8500만㎾까지 치솟았다. 전력예비율은 12%대로 떨어졌다.
제조업 위주의 한국 경제에 전력수급의 중요성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력 예비율만큼은 부족한 것보다 넘치는 게 낫다. 탈원전도 좋지만 서두르다 탈 날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