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근로자’ 인정했으나 현장선 무제한 연장근무
임금도 제대로 안챙겨줘.. 전국 고시원 총무 수만명 돈도 못벌고 공부도 못해
고용부선 “직접 신고해야”
#. 지난 4월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종일 총무'로 일한 김모씨(23)는 "염전노예 같았다"고 밝혔다. 업주는 "전화 잘 받고 청소하면 남은 시간은 공부해도 된다"며 매달 60만원과 남는 방을 준다고 했다. 휴일은 1개월에 2번을 약속했다. 실상은 달랐다. 오전 7시부터 밤 10시 30분까지 일하는 동안 업주의 간섭은 계속됐다. 아침밥 준비, 방 청소 등 실시간 업무 지침을 줬고 인터넷 설치 등 잡무는 별도로 지시했다. 세입자 전화를 못 받아 업주 휴대폰으로 문의가 가면 10분마다 전화를 걸어 '첫 울림'에 받는지 확인했다. 김씨는 2개월만에 일을 그만 뒀다. 하루도 못 쉬고 받은 돈은 총 40만원. 김씨는 "억울해서 노동관서를 찾았지만 근로자라는 점을 직접 증명해야 해 신고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고시원 총무들은 공부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업주의 말을 듣고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업주의 계속된 업무 지시 등으로 돈도 못 벌고 공부도 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김규태 기자
법원이 지난 6월 고시원 총무를 '근로자'로 인정했으나 현장에서는 노동착취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총무를 직원처럼 부리면서도 '쌍방계약'을 근거로,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채 임금을 체불하고 무제한 연장 근무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피해자가 개별적으로 노동청을 찾아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근로계약 없이 무제한 연장 근무 요구"
20일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고시원은 2007년 4700여개에서 올해 1만1800개로 늘었다. 통상 고시원에서 총무가 2명 이상 일하는 점을 고려하면 총무 근로자는 수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온라인 고시원구인구직 사이트에는 총무 모집 글이 올라오지만 근로계약을 맺는 경우는 찾을 수 없다. 한 고시원 업주는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는다. 총무는 전화 받고 청소만 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며 "한 달에 50만원 정도 주는 데 모두 고마워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고시원은 하루 종일 일하는 '종일 총무'를 모집하고 1개월에 60만~80만원의 수당과 방 하나를 제공한다. 휴일은 매달 이틀 정도다. 총무가 업주 지시.감독에 따라 근로자로 일한다면 이같은 계약은 '임금체불'이고 '연장근무'여서 근로기준법 위반 사유다.
서울중앙지법은 6월 고시원 총무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하고 휴게시간도 모두 '노동시간'이라고 봤다. 총무 근로자가 제기한 재판에서 고시원 업주는 "잠시 업무를 보는 1~2시간을 제외하면 모두 휴게시간"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전화.문자를 통해 내려오는 업주 지시를 수행한 점' 등을 근거로 "해당 시간은 사용자의 지휘.명령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휴게시간이 아니라 근로를 위한 대기시간"이라고 판시했다.
다른 총무들도 근로자처럼 일한다고 주장한다. 1년간 서울의 고시원 2곳에서 일한 이모씨(34)는 "업주가 만든 업무 지시 사항에 따라 종일 일하고 전화도 수시로 하면서 방이 얼마나 계약됐는지 등을 점검했다"며 "업무 숙지가 안될 때는 '돼지 같은 X' '모자란 X'라고 비난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휴일을 줬지만 전화하면 곧장 올 수 있도록 고시원 근처를 벗어날 수 없는 규칙을 정했는데 모든 고시원 조건이 같아 다른 데를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다"고 덧붙였다.
■고용부 "부당한 일 겪으면 직접 신고하라"
문제는 총무들이 근로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개별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노동청에 신고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는 문제가 있는 경우 피해를 각각 접수하라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고시원 총무에 대한 법원 판결이 있었지만 실제 운영되는 사정에 따라 근로자성 인정여부가 달라질 수 있는만큼 본인이 근로자라고 생각되면 노동청에 신고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용부가 고시원 총무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선제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혁 한국노총 법률팀 노무사는 "근로자가 노동청에 신고해도 근로자성을 입증받으려면 직접 증거를 모아야 하기 때문에 구제가 너무 어렵다"며 "총무처럼 '일반 계약'과 '근로 계약'이 불분명한 노동법 사각지대가 있는데도 노동부는 문제 생기면 찾아와 해결하라는 방관자적 태도"라고 비판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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