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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총수 없는 기업

영어 사전에 한국어 발음 그대로 등재된 단어들이 있다. Hangul(한글), Kimchi(김치))처럼 자랑스러운 것도 있지만 Kisaeng(기생), Chaebol(재벌)처럼 불명예스러운 단어도 있다. 재벌은 과거 한국 산업화의 주역, 스피드 경영 등 긍정적 의미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경유착, 황제경영 등 부정적 이미지만 남았다.

'총수 없는 재벌' 논쟁이 핫이슈로 떠올랐다.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 네이버가 준대기업집단에 지정될 것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준대기업집단은 대규모 거래, 주식소유 현황을 공시해 시장감시를 받는다. 현재로선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기업총수(동일인)로 지정돼 일감 몰아주기 등 갖가지 규제를 받게 될 확률이 높다.

동일인의 판단기준은 실질적인 경영권을 갖느냐다. 현재 네이버의 1대주주는 10%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다. 이해진 지분은 4% 초반으로 3대주주다. 하지만 이해진을 실질적인 지배주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의결권이 살아날 수 있는 자사주(10.9%) 등 우호지분이 25% 정도이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다른 대기업처럼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고 순환출자도 없는데 재벌의 틀로 규제하려 든다고 항변한다. 실제 네이버는 메신저업체 라인(지분율 79.8%)을 비롯해 대부분 자회사 지분을 100% 갖고 있다. 현재 이해진의 공식 직함은 글로벌투자책임자(GIO)로 네이버 경영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이해진이 동일인 지정을 극구 반대하는 것은 재벌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해외사업이 차질을 빚을까 우려해서다. 지난 주말 정부세종청사로 공정거래위원회를 찾아가고, 23일엔 보유주식 11만주(0.33%)를 처분한 것도 그래서다. 나는 총수가 아니라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지난 3월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지금까지 순수 민간기업 중 총수 없는 기업으로 지정된 사례는 없다.
공정위도 형평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네이버는 이상적인 기업지배구조다. 1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이해진 이사의 재선임을 반대하면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났던 것처럼 될 확률이 높다" 이재웅 포털사이트 다음 창업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