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일·법정기념일은 왜 하필 그 날짜일까
김일성과 연관 짓기 바쁜 북한의 개천절
어린이날도 알고 보면 ‘묵직’
지난 9월 28일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제69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연합뉴스
우리나라 법정기념일은 47일·국경일은 5일입니다. 무엇이든 ‘빨간 날’이 아니면 비교적 관심에서 멀어지곤 합니다.
제정 목적이나 이유가 의외거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날도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죠.
특히 이번 추석연휴 10일 중 6일은 법정기념일이거나 국경일입니다. 대부분이 민족 자긍심과 직결된 게 특징입니다. 기나긴 휴일에 의미가 퇴색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추석연휴와 겹친 법정기념일·국경일
-10월 1일 국군의 날
추석연휴 관계로 9월 28일 위용과 전투력을 과시하는 국군의 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1950년 10월 1일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북쪽을 향해 38선을 넘었던 날입니다. 동족상잔의 역사가 그대로 묻어 있기에 의미를 신중히 짚어야 하는 날입니다.
-10월 2일 노인의 날
먼저 1991년 10월 1일 UN에서 최초로 국제노인의 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우리나라는 국군의 날을 피하려고 10월 2일로 제정했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10월 3일 개천절(국경일)
고조선 건국일을 서기전 2333년 10월 3일로 보고 제정됐습니다. 이보다 124년 전 환웅(桓雄)이 백두산에 내려온 날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민족 최초 국가 건국일은 북한도 기념행사를 엽니다. 다만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고조선의 역사를 찾았다”면서 연결 짓기 바쁩니다.
-10월 5일 세계한인의날
재외동포의 민족 정체성과 자긍심을 위해 탄생했습니다.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에서 기념식 행사 등을 진행합니다. 10월 5일로 제정된 이유는 그날 역사적 사건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2007년 제정 당시 자료를 확인한 결과, 재외동포 등 여러 의견을 토대로 정했다”고 말했습니다. 5일 전후로 국군의 날, 개천절, 재향군인의 날, 한글날 등 민족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는 날이 많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10월 8일 재향군인의 날
세계향군연맹 가입국가와의 우호증진과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원의 사기를 높이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1965년, 5월 8일이 재향군인의 날로 제정됐습니다. 우리나라가 1961년 그날 세계향군연맹 회원국으로 가입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버이날과 겹치는 등 행사 진행 문제가 지속해서 나오자 2002년부터 10월 8일로 옮겼습니다.
10월 8일은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의 전신인 사단법인과 관련 있습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1953년 사단법인 <대한민국제대장병보도회> 설립 인가 일자 10월 8일을 기념으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10월 9일 한글날(국경일)
<훈민정음> 원본을 토대로 한글 반포 날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10월 9일입니다. 광복 이듬해 1946년 법정공휴일이 됐습니다. 그런데 1991년부터 2005년까지 한글날은 공휴일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많이 쉬어 산업발전에 지장을 준다‘며 경제계의 요구로 공휴일 축소가 논의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글날과 국군의 날이 그 대상이 됐죠. 그러다가 지속적인 한글 관련 단체의 요구로 2006년부터 한글날은 그 지위를 회복했습니다.
1990년 당시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기자회견에서 “10월에 휴일이 편중돼 과소비 풍조를 조장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법정공휴일을 줄였다”고 밝혔습니다.
■알고 보면 아픈 역사가 함께하는 기념일들
일반적으로 각 기관에서 열리는 기념일 행사는 밝은 미래를 그립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묵직한 역사에서 비롯됐습니다.
어른이 더 셀렌다는 어린이날. 민족종교인 천도교에서 1923년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어린이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고 밝은 미래를 그리는 희망찬 날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작은 일제 강점기의 무거운 역사와 함께합니다. 독립운동의 하나로 어린이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할 목적이었습니다.
어버이날은 원래 서양의 어머니날이 우리나라로 건너온 것입니다. 1955년부터 공식적인 어머니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효 사상이 뿌리 깊은 한국에서 굳이 어머니날을 정한 이유가 여성의 희생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 상황에서 국가 재건을 위해서는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1973년부터 ‘어버이날’이 됐습니다. 이는 ‘효 사상을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확대해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경찰의날(10월 21일)과 교정의날(10월 28일)도 역시 아픈 역사에서 시작합니다. 광복 직후 우리나라는 미국의 군대 아래 있었습니다. 1945년 10월 21일에 미국은 군정청(軍政廳, military government office) 산하에 지금의 경찰 역할을 하는 경무국을 만들었습니다. 경찰의날이 10월 21일인 이유입니다.
교정의날은 2002년에 법정기념일이 됐습니다. 교도소, 구치소 등 교정 관련 기관에서 행사를 엽니다.
이날 모범수 가석방도 이뤄집니다. 교정의날도 일제강점기와 관련 있습니다. 일본이 교정시설을 넘긴 날이 1945년 10월 28일입니다.
ohcm@fnnews.com 오충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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