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하지 않은 태아도 피보험자 자격을 가질 수 있어 '외래의 사고'로 인한 상해 시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209민사단독 오상용 부장판사는 A씨가 B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B사는 1억7000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2010년 2월 출산을 다섯달 가량 앞두고 자신과 태아를 피보험자로 한 B사의 상해 보험에 가입했다.
출산 직전까지 A씨와 태아에게는 특이 소견이 관찰되지 않았으나 분만 과정에서 응급 상황이 발생했고 출산 후 아이는 언어 및 보행장애를 겪는 저산소성 뇌 손상 진단을 받았다. 이에 A씨는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을 요청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이 사고가 "피보험자 지위를 취득하기 전인 출생 전 태아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보험금 지급 책임이 없다고 맞섰다.
보험 약관에 따르면 출산 후의 아이에 대해 피보험자로 규정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태아의 경우도 피보험자에 해당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태아는 모체로부터 전부 노출됐을 때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지만 피보험자는 보험 대상이 되는 자에 불과해 반드시 권리나 의무의 주체가 될 필요는 없다"며 "계약자유의 원칙상 당사자 의사에 따라 태아를 피보험자로 하는 보험 계약을 얼마든지 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인보험(생명보험)의 목적은 생명·신체의 보호에 있는데 태아를 피보험자로 하는 것은 그 목적에 충분히 들어맞는다"고 설명했다.
보험사에 대해서는 "보험 계약 체결을 위한 청약서와 보험증권에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태아'를 피보험자로 하고 있고 보장개시일을 의미하는 보험기간도 출산일 전인 보험 계약 '체결일부터'로 기재됐을 뿐"이라며 "태아를 '출생 시 피보험자'로 하는 규정을 문구 그대로 따르면 보험기간 개시 시점과 불일치해 질 수 밖에 없어 문구대로만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태아가 보험 약관상 피보험자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계약상 중요한 부분에 해당돼 명시·설명의 의무를 갖지만 B사는 이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보인다"며 "약관의 내용을 보험 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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