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공분양 좋은 물건 안 나오고 앞으로도 거의 가능성이 없어요. 서울이나 주변에는 할 만한 땅도 없잖아요. 얼른 종합청약통장으로 갈아타세요."
지난해 취재과정에서 내가 가진 '청약저축'이란 것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을 때 들은 대답이다. 열이면 아홉이 전용 85㎡ 이하 공공주택에만 청약을 넣을 수 있는 청약저축은 가치가 떨어졌다고 단언했다. 남은 한 명도 어차피 입지가 좋아 경쟁률 높은 단지는 가점이 만점에 가까울 것이란 비관론을 제시했다.
대학생 때부터 13년째 붓고 있는 통장이 사실은 별 쓸모가 없는 것이며 지난해 기준으론 1년, 현재 바뀐 정책으로는 2년 이상만 납입하면 똑같이 1순위 요건이 주어지는 주택종합청약통장과 거의 효과가 같다는 사실은 허탈함을 몰고왔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정부가 내놓은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해 공공주택에만 통하는 청약저축의 가치는 반등했다. 무주택 서민과 청년, 신혼부부 등을 위한 공공주택을 100만가구 건설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대선 공약에서도 공적임대주택을 늘리겠다고 약속했고, 17만에서 100만가구로 불어난 공급계획이 반가웠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설마 100만개 중 내 것 하나 없을까.
그런데 상황은 기대와 달랐다. 저소득가구에 41만가구, 어르신을 위한 공공임대 5만가구에서 이미 100만 중 절반가량이 빠진다. 나머지에서도 20만가구는 신혼부부를 위한 것이고, 청년주택 19만가구가 그나마 비벼볼 수 있는 언덕이니 다시 본다. 현재 입주자격인 대학생 사회초년생 등에 해당되지 않고, 추가된 요건은 대학원생, 장기취업준비생, 소득활동 증명이 어려운 알바생.비정규직 근로자다.
이 같은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 스스로를 국가가 인정한 고소득 1인가구라 위안 삼는 것과 동시에 이 100만가구의 요건에 포함되지 않는 무주택.서민도 여전히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더구나 지금까지 정권별 주택정책이 제대로 실현되거나 연속된 적 없다는 점에서 100만가구는 보기 좋은 떡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당장 단 5년 내에 100만가구를 건설하겠다는데 부지 확보나 예산 문제는 확정된 바 없다.
청약저축통장을 야무지게 써보겠다는 생각은 또 바람으로 그칠 듯하다. 그래도 언제 기회로 바뀔지 모르는 정책을 기다리며 다달이 쌈짓돈을 적립할 수밖에 없다. 100만가구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지만 나는 명백히 무주택 서민이기 때문이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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