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엔터테인먼트 그룹 디즈니가 미디어 재벌 폭스의 콘텐츠 사업을 인수하려는 가운데 이번 인수합병(M&A)의 승자를 두고 업계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 관계자들은 폭스 인수 후 디즈니의 새 최고경영자로(CEO)로 루퍼트 머독의 아들인 제임스 머독이 거론되면서 이번 거래가 사실상 머독 가문의 디즈니 인수일 수도 있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미 경제전문방송 CNBC는 5일(이하 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양사의 M&A거래가 이미 마무리 단계이며 다음주 발표를 앞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디즈니가 폭스에 지불할 금액은 600억달러(약 65조 6280억원)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디즈니, 폭스 콘텐츠 확보로 경쟁력 강화
디즈니는 폭스 미디어그룹 중에서 영화사인 21세기폭스의 스튜디오, TV프로덕션 사업부, TV콘텐츠와 케이블채널 일부, 인도와 남미 사업부 등을 인수할 예정이다. 폭스그룹이 보유한 유럽 유료 케이블방송인 스카이와 미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기업인 훌루의 지분도 디즈니에 넘어간다. 폭스 뉴스와 스포츠 사업부는 그대로 폭스그룹에 남는다. 미 케이블 업체인 컴캐스트도 폭스그룹의 콘텐츠 인수에 뛰어들었으나 디즈니가 한발 빨랐다.
현지 언론들은 이번 인수가 디즈니의 OTT 사업 확장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OTT 산업의 발전과 영화 관객 감소에 긴장하던 디즈니는 지난 8월에 미 최대 OTT 기업인 넷플릭스와 결별하고 2019년부터 자체 OTT 사업에 착수하겠다고 선언했다. 디즈니는 폭스의 콘텐츠를 사들이면서 '아바타'나 '엑스맨', '심슨가족'같은 흥행작들의 판권을 쥘 수 있게 됐다. 경쟁사인 넷플릭스는 내년 한 해 동안 80편의 자체 제작 영화를 선보일 예정이며 애플과 아마존 역시 OTT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물론 M&A에 따른 독과점 규제가 예상되지만 거래가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지난달 미 당국은 자국 내 2위 통신사 AT&T가 미디어 그룹인 타임워너를 인수하려 들자 반독점 규정 위반이라며 소송을 걸었다. 디즈니는 AT&T와 달리 통신 사업자가 아니기에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화두에서 빗겨갈 수 있다. 5일 M&A 임박 소식이 알려진 직후 디즈니 주가는 3% 떨어졌으며 21세기폭스 주가는 1% 올랐다.
■머독 가문이 디즈니 이끌 수도
같은 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소식통을 인용해 21세기폭스의 CEO인 제임스 머독이 이번 거래 조건으로 디즈니 내에 고위급 경영진 자리를 맡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디즈니를 이끄는 로버트 아이거 CEO는 지난 2005년에 취임해 2015년 물러날 예정이었으나 후계자를 찾지 못해 퇴임을 3번이나 미뤘다. 디즈니 측은 유력한 후계자였던 톰 스태그스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지난해 사임하면서 당장 2019년 아이거 CEO 퇴임 이후 눈에 띄는 지도자가 없는 형편이다.
올해 44세인 제임스 머독은 약 20년간 미디어 산업에 종사한 인물로 비교적 젊으면서도 경험을 갖췄다. 익명의 고위 관계자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를 통해 "이번 거래는 아이거 CEO에게 가장 괴상한 형태로 끝날 것"이라며 "제임스 머독은 이번 거래 끝나면 (디즈니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애타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오랫동안 아버지인 루퍼트 머독 폭스그룹 회장 밑에서 가족 일을 돌봐온 제임스 머독이 이번 거래를 계기로 독립해 자신만의 사업을 꾸리려 할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아버지와 함께 폭스뉴스 경영에도 참여했던 그는 지난 2014년 이후 폭스뉴스 이사회에 들어온 남동생 래클란 머독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머독 가문 역시 매각하는 자산만큼 디즈니의 주식을 받을 예정이므로 이득이 적지 않다. 관계자는 루퍼트 머독이 이미 콘텐츠 산업의 경쟁 심화와 한계를 알고 있었다며 "자산 매각을 통해 따로 자본을 들이지 않고 디즈니 주식을 갖게 됐으니 매우 합리적인 거래"라고 평가했다. 앞서 애플의 공동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는 2006년에 자신이 보유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픽사를 디즈니에 팔면서 디즈니 주식의 약 8%를 확보, 최대 주주가 되기도 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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