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68년 기다림의 대가 납북자기념관 뿐…전시성 사업에 깊은 한숨

[잊혀져가는 납북자 가족]②명예회복 됐으나 개별 보상 전무

정부가 최근 6·25전쟁 납북자들을 월북자가 아닌 공식 납북자로 인정,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기념관을 건립했다. 개별 보상이나 지원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였다. 수십년 세월을 연좌제 고통 속에 살아야 했던 전시 납북자 가족들은 낙심했다. 일부 가족들 사이에서는 ‘결국 생색내기용 전시성 사업에 이용당한 것 아니냐’는 원망의 목소리도 나온다.

68년 기다림의 대가 납북자기념관 뿐…전시성 사업에 깊은 한숨
지난해 11월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서 열린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 개관 기념식. /사진=박준형 기자

■정부 위원회 6년간 한시 활동…기념사업 한정
정부 차원에서 전시 납북자 문제가 본격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5일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 상봉, 비전향장기수 송환 등 남북간 인도적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전시 납북자 가족들이 입법청원 노력을 본격 전개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2010년 3월 ‘6·25전쟁납북피해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명예회복에관한법률’(전시납북자법)이 제정됐고 이 법에 따라 같은 해 12월 ‘6·25전쟁납북피해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명예회복위원회’가 발족했다. 6·25전쟁 발발 이후 무려 60년 만이다.

국무총리 소속의 위원회는 전쟁 기간 납북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벌였고 2011년 1월부터는 납북 피해 신고 접수를 받았다. 2015년 12월 종료된 납북자 심사 결과 5505건의 납북 피해 신고가 접수됐으며 총 4777건이 전시 납북자로 결정됐다. 정부가 추산하는 전시 납북자 10만여명의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원이다.

■“전후 납북자는 보상받았는데…”
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 건립을 마지막으로 약 6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했다. 기념관은 납북 기록을 보존·전시하는 공간으로, 전시 납북자 명예를 회복함으로써 가족들이 그동안 응어리진 마음을 다소 풀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납북자 가족들은 여전히 보상 및 지원이 없는 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납북 피해 신고가 예상보다 적었던 것도 당초 개별 보상 문제가 빠지면서 신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가족이 많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통일부는 “처음부터 위원회 활동에 개별 보상 문제는 빠진채 명예회복과 기념사업만으로 한정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시 납북자 가족들은 개별 보상이 제외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2007년 ‘군사정전에관한협정체결이후 납북피해자의보상및지원에관한 법률’(전후납북자법) 제정 이후 정부는 6·25전쟁 이후 납북된 어부 등 귀환 납북자를 중심으로 수천만원의 보상과 각종 보훈행정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반면 전시 납북자 가족에 대한 보상이나 지원은 전무하다.

이에 따라 전시 납북자 가족들과 27개 시민사회단체는 ‘6·25납북피해자대책위원회’를 구성, 국회가 전시 납북자 보상지원법을 제정해 실질적인 보상을 해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6·25전쟁 후 납북된 어부 가족과 달리 전시 납북자는 단돈 1원도 보상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위배된다”며 “최소한 납북이 공식 확인된 4000여명만이라도 국가가 보상하는 것이야 말로 국가적 정의를 세우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6·25납북피해자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인 김규호 선민네트워크 대표는 “전시 납북자들에 대해 보여주기식으로 기념관 하나만 건립하고 (역할을) 다했다는 것은 그들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파렴치한 행위”라며 “전시 납북자 및 가족에 대한 진정한 위로와 명예회복은 정부가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지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jun@fnnews.com 박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