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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체리피커 길들이기

2000년 초 한 경기도민이 1년간 용인 에버랜드를 300번이나 드나들었다. 거의 매일 야간 산책로로 이용했다고 한다. 신용카드의 무료입장 혜택 덕분이다. 당시엔 혜택이 후했다. 카드사들이 점유율을 높이려고 혜택 경쟁을 벌인 결과다. 1년간 17만원을 쓰고도 242회 영화관람료를 할인받은 사람도 있다. 체리피커(cherry picker)다. 자기 부담은 거의 없이 혜택만 따 먹는 사람을 말한다. 요즘 카드는 결제실적이 충분해야 겨우 혜택을 누린다. '실적 있는 곳에 혜택 있다'는 원칙을 만든 것 같다.

체리피커는 소비자만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돈을 벌면서 세금을 내지 않는 업체들은 과세당국 입장에선 골칫거리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가 대표적이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IT업체들은 늘 과세논란을 일으킨다. 주로 고정사업장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각국 세법의 허점을 파고든 결과다. 글로벌 IT기업들은 유럽 전역에서 영업하면서도 실제 법인은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등 세율이 낮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구글세 논란도 그래서 불거졌다. 구글은 검색광고와 동영상 서비스가 주수익원이다.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면 어디서든 돈을 번다. 유럽 주요 국가들이 '얌체' 구글을 압박해왔다. 여러 해 논란 끝에 구글은 2016년 영국에 1억3000만파운드(약 1900억원)의 세금을 냈다. 이듬해 이탈리아도 10년치 세금 3억6000만유로(약 3800억원)를 매겼다. 프랑스와 스페인 그리고 인도네시아도 구글을 압박 중이다.

아마존도 프랑스에 고개를 숙였다. 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프랑스에 세금을 내겠다고 밝힌 것이다. 아마존이 프랑스에 내야 할 세금은 무려 2억유로(약 2700억원)다. 아마존은 앞서 이탈리아에도 1억유로(약 1300억원) 세금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적어도 유럽 주요 국가에선 글로벌 체리피커들이 무릎을 꿇는 모양새다. 아직 한국에선 글로벌 IT업체들이 세금을 냈다는 사례가 없다.
다행히 페이스북이 지난달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세금을 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구글 역시 국내에서 과세 역차별 논란의 한복판에 있다. 이번엔 구글도 좋은 소식을 가져왔으면 좋겠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평범한 원칙을 구글도 모르진 않을 테니까.

ksh@fnnews.com 김성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