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스데이 멤버 유라가 아이돌 최초로 피임약 광고 모델로 나섰으나 남성의 콘돔 광고는 TV에서 찾아볼 수 없다. 피임을 여성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와 지나친 광고 규제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부작용 많은 여성 피임약은 광고하고 콘돔 광고는 안 된다? 콘돔 사용 장려, 이제는 정부가 해야 합니다"
지난달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글은 1일 현재 3만2000여명이 서명할 정도로 큰 반응을 얻고 있다. 실제 걸스데이 멤버 유라가 아이돌 최초로 피임약 광고 모델로 당당히 나섰 으나 남성의 콘돔 광고는 찾아볼 수 없다. 피임을 여성만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피임은 여성 책임?.. 콘돔 사용률 11%
우리나라에서 콘돔을 소재로 한 TV 광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옥시 계열의 듀렉스코리아는 지난 2013년 국내 최초로 콘돔 TV 광고를 선보였다. 2004년 질병관리본부가 에이즈를 막기 위해 콘돔 사용 권장 공익광고를 TV에 내보낸 적이 있으나 특정 콘돔 브랜드가 직접 광고를 집행한 것은 듀렉스가 처음이다.
그러나 듀렉스는 TV 광고는 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 활동도 접었다. 듀렉스 관계자는 “(듀렉스) 홍보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다른 브랜드에 우선 순위를 둔다는 경영상 결정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현재 TV 콘돔 광고는 전무하다.
이처럼 콘돔 광고를 찾아보기 힘든 것은 가부장적이고 낡은 성의식이 만연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피임률 자체가 낮은데다 성교육이 혼전 성관계를 터부시하는 방식으로만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여성의 성적 실천을 여전히 낙인 찍는 성문화로 인해 여성이 남성에게 피임을 말하는 것조차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박주현 서울대보라매병원 비뇨기과 교수팀이 발표한 ‘한국여성의 성생활과 태도에 관한 10년간의 간격연구: 한국 인터넷 성별 설문조사 2014’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콘돔 사용률은 11%에 불과했다. 연구진은 “한국 사회가 급속히 서구화되고 성평등 문화가 대중화됐음에도 유교에 기반한 가부장제 가족 문화가 깊은 뿌리를 형성해 임신과 출산, 피임은 여성의 책임이었다”고 지적했다.
남성 콘돔 광고에서 사용하면 안 되는 문구들 의료기기광고사전심의위원회의 의료기기법 위반 광고 해설서에 정리돼 있다.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게 콘돔 업계들의 주장이다.
■까다로운 광고 심의 기준도 문제
콘돔업계는 지나치게 엄격한 심의 기준이 콘돔 광고의 발목을 잡는다고 주장한다. 의약품인 피임약과 달리 콘돔은 의료기기로 분류돼 있다. 따라서 콘돔 업체가 광고를 하려면 의료기기광고사전심의위원회, 간행물윤리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실제 심의위의 의료기기법 위반 광고 해설서에 나오는 남성용 콘돔의 심의 기준은 까다롭다. 심의위는 ‘000을 위한 혁신적 패키지’라는 콘돔 광고 문구도 “거짓·과대 광고를 했다”며 ‘혁신적’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게 했다. 또 ‘센스만점 필수 아이템’이란 문구 역시 “절대적 표현을 사용했다”며 ‘필수’란 단어도 써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또 도서·잡지·만화·신문의 유해성을 심의하는 기관인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지면상의 콘돔 광고를 불허하는 추세다. 간행물윤리위 관계자는 “여성가족부 장관이 고시한 청소년 유해물건에 특수형 콘돔 등이라고 명시돼 있어 이를 폭넓게 적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청소년 유해물건에 일반 콘돔은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게 여가부의 설명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특수형 콘돔에 대해서만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지정했을 뿐 일반 콘돔은 청소년들도 사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각 기관마다 다른 기준을 내세워 콘돔업체 입장에서는 광고가 어려운 것이다.
대한피임생식보건학회 총무이사인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이동윤 교수는 “콘돔 광고를 하지 않는 것보다 콘돔 사용 시기나 방법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고 특히 청소년들이 필요할 때 쉽게 구매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콘돔은 효과적인 피임 방법으로, 편의성이 뛰어난데다 약물과 연관된 부작용이 없고 각종 성병의 전파를 막아준다”고 강조했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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