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매도인이 중도금을 지급받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한 행위가 배임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대법원에서 열띤 공방이 펼쳐졌다. 개인간 사적인 거래계약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형사상 처벌을 할 수 있느냐가 쟁점으로 대법원이 어떤 최종 결론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두 번째 공개변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정에서 배임 혐의로 기소된 심모씨의 상고심 사건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날 공개변론은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두번째다.
심씨는 2012년 10월 경남 고성군 토지 660㎡를 A씨에게 9700만원에 매도하는 매매계약을 체결, 계약금 2000만원을 받았다. 잔금 지급과 소유권이전등기절차가 미뤄지던 중 심씨는 이듬해 2월7일 A씨에게서 중도금 명목으로 1000만원을 지급받은 뒤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리면서 매각한 토지에 근저당권(채권최고액 합계 9500만원)을 설정했다.
검찰은 심씨의 이런 행위를 부동산 이중매매(부동산을 팔고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해주기 전 다른 사람에게 또 다시 파는 행위)로 보고 배임 혐의를 적용, 재판에 넘겼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성립하는 범죄다.
1, 2심 재판부는 채권최고액 합계 9500만원을 피해액으로 보고 배임 혐의를 유죄로 인정, 다른 범죄사실(무고)과 합해 징역 8월을 선고했다.
하급심 판결에 불복해 심씨가 상고하자 대법원은 현재 대법원에 관련 유사사건이 27건 계류중이고 하급심에서도 동일한 쟁점의 유사사건들이 진행중인 점 등을 고려, 올 1월 이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민사상 책임, 형벌 적절한가 공방
재판의 쟁점은 부동산 매도인이 매수인에 대한 등기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민사상 채무불이행을 넘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다. '어느 누구도 계약상 의무의 이행불능만을 이유로 구금되지 아니한다'는 국제규약에도 어긋난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그러나 대법원은 1972년 이래로 매도인의 등기협력의무는 매수인의 재산보호를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타인의 사무가 되기 때문에 매도인이 부동산을 제3자에게 이중으로 양도한 경우에는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검찰 측은 "이중매매는 고의적으로 첫 번째 계약한 매수인에게 부당함에도 다른 매수인에게 부동산을 넘긴 것으로 관련 국제규약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나서 돈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깨달은 것과 처음부터 돈이 없으면서 음식을 시켜먹는 것은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나라 부동산 거래는 전 재산을 대부분 투자하는 일생일대 거래가 대부분으로, 매수인은 잔금을 치르고 등기서류를 받기전에 계약금 및 중도금을 매도인에 우선적으로 지급해 매도인보다 불리한 지위에 있다"며 "계약파탄으로 인한 보호필요성은 매수인에 더 크게 요구한다"며 "기존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는 것은 국민 대다수의 일상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변호인 측은 "계약이행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매매계약 체결당시 적절한 당사자들의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야한다는 새로운 법·경제학적 관점이 대두되고 있다"며 "계약이 이행되지 않을 때 재산의 원상회복이나 적절한 손해배상을 통해 형벌이 아닌 당사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에스크로 제도 △공증인을 통한 부동산 매매 △손해보험제도 △가등기와 처분금지 가처분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변호인 측은 "부동산 거래는 개인을 이익을 위한 거래로 이는 자기보호를 위해 바기비용을 들이는 수익자 부담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며 "부동산 이중매매를 배임죄로 처벌하지 않을 경우 에스크로 제도 등 이러한 거래가 활성활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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