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아웅산 국립묘지가 폭탄테러로 인해 지붕이 무너져 내린 현장을 관계자들이 조사하고 있다. 1983.10.15. 연합뉴스 자료 사진
정부는 지난 1983년 10월 9일 미얀마(당시 국가명 버마) 아웅산 테러 당시 버마 정부에 북한과 국교단절을 요구하는 등 보복에 나섰음을 보여줬다.
외교부가 29일 30년이 넘은 외교문서 중 공개한 것에 따르면 당시 버마 우 마탼 차석은 버마와 북한간 제협정은 지난 11월 6일 오후 1시를 기해 일단 정지된 것으로 본다는 의견을 표명한바 있다.
미얀마 정부는 당시 북한과 전면 단교조치를 취하고 전반적인 사후처리 문제에 관해 경제·영사·조약담당 부서별로 작업을 진행했다.
같은달 16일 우리 정부는 출국한 북괴 대사관원 및 가족의 명단 제공을 요청하고 기타 북괴인이 버마에 잔류하고 있는지 여부 및 북괴와의 제 협정 파기에 관해 협의했다.
버마 정부는 북괴 전면 단교조치 이후 전반적인 사후처리문제에 관해 경제·영사·조약담당 부서별로 작업을 진행했다.
주재국 정부는 범인 재판을 위해 특별재판소를 구성했다. 특별재판소의 재판결과는 곧바로 대법원으로 상고되는 것이다.
재판은 버마어와 중국어로 진행돼, 중국어가 가능한 국선변호사를 선임하기도 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를 토대로 보면 아웅산 테러 범인은 개성 출신으로 옹진항에서 배를 타고 1983년 9월 22일 버마 랑군에 도착했다. 범인은 10월 6일 폭탄을 장치했다. 10월 7~8일 사건현장인 아웅산묘소 풀밭 속에 은신했다. 9일 사건당일 묘소 입구 소재 주유소겸 차량정비소에서 기다리다 이 대사 차가 지나는 것으로 보고, 이를 본대 모터케이드(주요 인사를 태운 차량이 천천히 나가는 행렬)로 알고 도착했을 시간을 계산해 폭파 스위치를 눌렀다고 했다.
한편 아웅산 테러는 북한이 1983년 10월 9일 버마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및 수행원을 대상으로 자행한 폭탄 테러다.
전 대통령이 서남아·대양주 6개국을 공식 순방하던 중 첫 방문국인 버마에서 북한의 테러로 공식·비공식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서상철 동자부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17명이 사망했다.
전 대통령은 사건 후 일정을 중단하고 이튿날 새벽 급거 귀국했고, 우리 정부는 한국정부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해 버마와 합동 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버마 당국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필지령을 받은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등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lkbms@fnnews.com 임광복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