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캐나다처럼 국토가 동서로 넓게 펼쳐진 나라는 여러 개의 표준시를 쓴다. 오래전 미국 동부에서 연수를 마치고 중서부를 종단해 하와이까지 여행할 때다. 동부 표준시(EST)를 시작으로 중앙(CST).산악지역(MST).태평양(PST) 표준시를 차례로 체험했다. 자연스러웠던 느낌이었다.
반면 십수년 전 중국을 취재할 때는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해가 중천에 떠있어야 할 시간인데 중국 서부에서 맞은 아침은 아직 어스름했다. 동서로 5200㎞나 되는 대륙인데 표준시가 하나였으니 생긴 현상이다. 본래 5개의 시간대를 사용하던 중국은 마오쩌둥이 1946년 신중국 수립과 함께 '베이징 시간'으로 통합했다.
대한제국은 1908년 한반도의 중심인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표준시를 정했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 기준인 세계 표준시와는 8시간30분 차이다. 이후 일제 때 동경 135도 기준으로 바뀌었다. 광복 후 주권회복 명분으로 대한제국 표준시로 돌아갔다가 박정희정부 때인 1961년 동경 135도 기준으로 회귀했다. 그러나 북한도 동경 135도를 기준 삼으면서 한반도 표준시는 늘 하나였다. 2015년 북한이 '일제 청산'을 기치로 동경 127.5도 기준 평양 표준시를 선포할 때까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27 정상회담에서 평양 시간을 서울 표준시에 맞추겠다고 했다. 판문점 평화의집에 걸린 2개의 시계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면서다. 여간 반갑지 않다. 동경 135도든, 127.5도든 기준의 우열이 있을 리야 없다. 다만 이 좁은 땅에서 30분 시차인, 두 표준시의 존재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개성공단 등 남북교류 현장에서 혼선이 적잖다니….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4월 3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가 '평양시간을 고침에 대하여'라는 정령을 채택했다"며 표준시 통일을 확인했다.
하지만 "주체 107년(2018년) 5월 5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다"고 한 대목이 마음에 걸린다. 북측은 지난 1997년 고 김일성 주석의 출생연도인 1912년을 '주체 원년'으로 정했었다. 북한이 주체라는 연호를 사수하려 하는 한 분단체제가 장기화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도 든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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