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별을 선언한 여자친구를 강제로 껴안고 기습적으로 키스를 한 행위도 강제추행죄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상대방에게 폭행이나 협박을 가해 항거불능 상태에 놓이게 한 경우 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힘의 정도를 불문하고 가해행위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뤄졌다면 추행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배모씨(40)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부산지법 형사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법원 등에 따르면 A씨(여)와 수 년간 알고 지내다가 2016년 7월부터 교제를 시작한 배씨는 한 달 뒤 A씨로부터 일방적으로 결별을 통보받았다. 그러나 배씨는 단순히 A씨가 화가 나 결별을 통보한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연락을 시도하던 중 결별을 통보받은 날부터 2주 정도 지난 시기에 A씨 친구들의 주선을 통해 A씨를 술자리에 오도록 했다.
술자리 직후 배씨는 집으로 귀가하려는 A씨의 팔을 붙잡으면서 계속 이야기를 시도하다가 이를 뿌리치며 걸어가는 A씨를 두 팔로 안고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배씨는 이어 A씨를 끌어당겨 껴안고 얼굴에 키스를 했다. 배씨는 결국 A씨의 고소로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 2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1,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가 피해자에게 내키지 않는 신체 접촉에 따른 일반적인 불쾌감을 넘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는 추행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뿐만 아니라, 공소사실상 키스의 경우 피고인의 폭행 또는 협박이나 그 추행행위의 기습성으로 인해 피해자가 항거하기 곤란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우선 "강제추행죄는 상대방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해 항거를 곤란하게 한 뒤 추행행위를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된다"며 "이 경우 폭행은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것임을 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피해자를 끌어안고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은 행위나 피해자를 끌어안고 얼굴에 키스한 행위는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며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2심 판단을 다시하라고 결정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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