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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포커스] 실패한 프랑스'반값 우유'정책 보편요금제, 반면교사 삼아야

프랑스 혁명 직후였던 1793년. 급진주의자인 막시밀리앵 드 로베스피에르는 살인적 물가를 잠재울 방안을 고심했다. 그는 자본가와 독점상인들, 물건을 싹쓸이해 가격을 올리는 투기꾼들에게도 개혁의 칼을 댔다. 그해 9월 공표한 가격상한제(General Maximum)를 통해서다. 정부가 정한 생필품은 고시가격 이하로만 팔게 했다. 우유가 대표적이다. 로베스 피에르는 "모든 어린이는 값싼 우유를 먹을 권리가 있다"며 우윳값을 반값으로 낮춰 고시했다. 정부 고시가격보다 비싸게 파는 상인은 차익의 2배를 벌금으로 냈다.

서민들은 행복해졌을까. 얼마 안가 값싼 우유가 시장에서 싹 사라졌다. 낙농업자들이 젖소를 팔아치워서다. 젖소에 먹일 건초값이 비싼데다 마진이 줄자 더이상 우유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정부가 건초값을 낮추자 이번엔 건초업자들이 다른 업종으로 갈아탔다. 우유는 암시장에서나 고가에 팔렸고 부자들이나 겨우 구하는 귀한 식료품이 됐다. 베이컨, 버터, 와인, 식초, 감자 등도 가격상한제로 몸값이 더 뛰었다. 그탓에 로베스 피에르는 역사책 뿐 아니라 경제학 책에도 자주 나온다. 무리하게 가격을 통제하면 역효과가 난다는걸 보여준 반면교사인 셈이다.

비슷한 상황이 한국에서도 재현될 조짐이다. 통신요금 얘기다. 이달 말이면 국회가 보편요금제 출시방안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킬지 말지를 결정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올린 제안을 규제개혁위원회가 받아들인 결과다. 개정안은 1위 통신사업자가 보편요금제를 출시토록 하는 근거를 담았다. 데이터 1GB, 음성통화 200분을 월 2만원대에 내놓도록 하는 방안이다. 1위업체를 필두로 이통3사 모두 2만원대 저가 요금을 내도록 하겠다는 노림수다. 정부가 2년마다 보편요금제에 담길 데이터와 요금 수준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근거도 남겼다.

정부의 '착한 정책'이 장기적으로 역효과를 보진 않을까. 무리하게 찍어 누르면 시장이 기형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전조증상은 이미 경험했다. 지난해 9월 정부가 선택약정 할인율을 20%에서 25%로 낮추자 이통3사들은 줄줄이 혜택을 빼거나 줄였다. 현 상황에선 보편요금제가 나올 명분도 부족하다. 이미 통신사들은 요금제를 개편했다. 지난달 KT는 데이터요금제를 개편해 3만3000원짜리 LTE 베이직 요금제를 내놨다. 선택약정할인 25%를 적용하면 월 2만원대로 보편적 요금제와 차이가 없다. SK텔레콤도 렌탈요금제를 내놨다. 할부 구매비용보다 저렴해 통신비를 아껴쓰도록 한 요금제다. 보편적 요금제는 알뜰폰 사업자를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이통3사와 만들어놓은 경쟁체제를 스스로 허무는 꼴이 될 수 있다.

이통사들은 당장 15일부터 5세대(5G) 주파수 경매로 치열한 경합을 벌여야 한다. 최소경매가격만 약 3조3000억원. 경매가격이 5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통신사 입장에선 주파수 출혈 경쟁이 뻔한 상황에서 보편요금제까지 만들어야 하니 어느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헷갈릴 지경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정부가 무리하게 시장을 찍어 누르면 나중에는 용수철처럼 튀어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ksh@fnnews.com 김성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