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맘은 하루하루가 전쟁터, 아이들은 숨가쁜 학원 뺑뺑이.. 이래서야 저출산 저주 풀릴까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하고, 작은아이 깨워 이모님 댁에 맡기고, 큰아이 깨워 씻기고 아침 먹여 어린이집 보내고, 나 출근해 하루 종일 일하다 퇴근하고, 둘째 데려오고, 큰아이 받고, 헐레벌떡 세수하고, 대충 집 치우고, 설거지하고, 아이들 재우고…. 상갓집 간 남편은 오늘도 밤늦도록 전화 한 통 없네." 어느 30대 직장맘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하소연이다.
직장맘들은 전쟁 같은 삶을 산다. 집과 아이, 직장에다, 이것저것 잔소리를 해대는 시댁까지 겹치면 삶은 지옥으로 변한다. 날마다 원더우먼이 돼야 한다. 투명 비행기와 황금 밧줄, 총알을 막아내는 초능력을 지닌 세계 최강의 여전사가 돼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결혼을 피하라. 만약 하더라도 아이를 가질 생각은 아예 안하는 편이 좋다.
17세 소녀 클로이 김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월등한 실력으로 금메달을 따자 많은 한국인이 환호했다. 클로이는 부모가 미국으로 이민 가서 낳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만약 그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그 나이에는 아마도 명문대에 가기 위해 학원 뺑뺑이를 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의 아이들은 학원 뺑뺑이와 올림픽 금메달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숨가쁘게 뺑뺑이를 돌아야 한다. 요즘에는 유아들도 대열에 합류했다. 서울 강남 등지에는 영어유치원이 즐비하다. 영어를 가르치는 유아원도 많다. 제2외국어를 가르치는 곳도 있는데 중국어가 인기라고 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기죽지 않으려면(혹은 살아남으려면) 슈퍼베이비가 돼야 한다. 그런 유아들이 짠하다.
꿈 많은 청소년기를 이렇게 보내고도 명문대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명문대를 나온들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좌절한다. 취업과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그리고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다시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은 점점 태어나고 싶지 않은 나라가 되고 있다. 직장맘들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다시 아이를 갖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스스로에게도, 아이에게도, 그런 삶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 한국은 그들에게도 살고 싶지 않은 나라다.
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은 통계로 입증된 현실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에서 태어난 신생아 수는 2만5000명으로 사망자 수(2만6900명)보다 적었다. 죽은 사람 수만큼도 태어나지 않았다.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인구통계에는 삶에 지친 원더우먼과 슈퍼베이비들의 신음과 원성이 가득하다. 우리는 그들이 내는 소리를 듣는 척은 하지만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주지는 않는다. 그저 돈만 쏟아부을 뿐이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127조원을 썼다. 하지만 결과는 더 나빠졌다. 이 기간에 신생아 수가 49만명에서 35만명으로 거의 30%나 줄었다. 돈만으로는 저출산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원더우먼과 슈퍼베이비들의 삶을 개선해보려는 진정성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통계청은 5년 후에는 연간으로도 신생아 수가 사망자 수보다 적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인구 자연감소 시대가 코앞에 와 있다.
저출산은 한국 사회를 향한 가장 원초적 형태의 저주다. 그 저주를 풀려면 돈을 쏟아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원더우먼과 슈퍼베이비들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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