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체제는 본래 철저한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로 운영된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아 개인이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는 적다. 그러다 보니 생산 계획에 차질이 생길 때마다 '명령 시스템'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개혁.개방 전 중국과 3대 세습체제인 북한에서 최고지도자들이 이른바 '현지 지도'라는 통치술을 애용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현지 지도라는 이름의 '명령 경제'는 때로 큰 재앙을 남겼다. 1958년 마오쩌둥의 중국 쓰촨성 농촌 시찰이 남긴 후유증을 보라. 당시 "저 새는 해롭다"라는 마오의 한마디에 '참새 섬멸 총지휘부'가 꾸려지고 한 성에서만 320만마리를 잡는 개가를 올렸다. 하지만 참새가 곡식도 먹지만 이에 기생하는 해충들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는 참혹했다. 중국 전역의 농작물이 초토화되고, 대약진운동(1958~1960년대 초) 시기 3000만명이 굶어죽는 비극으로 이어지면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말부터 평안북도를 현지 지도 중이다. 북한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신의주 경제특구에서 이례적으로 강한 질책을 쏟아냈다. 한 화학섬유공장에서는 "마구간 같은 낡은 건물" "이런 일꾼들은 처음 본다"는 등 거친 표현과 함께 "똑똑히 하라"고 지배인과 당위원장 등을 다그쳤다. 내각의 지도통제 책임까지 거론했다니 수행한 당정 간부들도 간담이 서늘했을 법하다. 김 위원장이 2015년 대동강 자라공장을 시찰한 뒤 돌아오는 차에서 지배인을 처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뒷얘기도 있지 않은가. 태영호 전 주영 북한공사의 회고록에 수록된 비화다.
최고권력자의 일갈에 수많은 '마구간 같은' 공장들이 죄다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바뀔 리는 만무하다.
북한 내 경제 일꾼들을 상대로 군기를 잡는다고 신의주 경제특구로 중국 등 해외자본이 밀려들 리도 없다. 피폐한 중국 경제가 살아난 것도 쓰촨성 출신의 덩사오핑이 인센티브제 등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한 덕분이 아닌가. 빈사 상태의 북한 경제를 살릴 해법도 뻔하다. 김 위원장이 김일성.김정일 선대 통치자들이 했던, 구태의연한 현지 지도에 연연하지 말고 문명사의 시계 태엽이 개혁.개방을 향하도록 돌리는 것 이외에 무슨 대안이 있을까 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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