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전체가 속은 기분이에요"
40대 여성 A씨는 매주 정신과 치료를 받고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 7개월간 결혼을 전제로 교제한 B씨는 모든 게 거짓이었다. 금융회사를 다니고 명문대를 졸업했다던 B씨는 운전기사, 고졸이었다. 미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유부남이었다. 사실을 알게 된 A씨가 항의하자 B씨는 돌연 자신이 협박당했다는 등의 이유로 A씨를 공갈 혐의로 고소했다. A씨는 "한 사람을 믿었는데 이런 일을 겪었다"고 분노했다.
A씨가 B씨를 만나게 된 계기는 데이트앱이다. A씨는 데이트앱으로 B씨와 대화를 나누다 호감을 갔게 됐다. B씨는 "친모가 희귀병을 앓아 결혼을 못했다"며 "결혼을 전제로 진지하게 만나자"고 A씨를 속이고 성관계와 금품을 요구했다. A씨가 데이트앱을 찾은 건 나이와 결혼 때문이었다. 그는 "나이가 들다보니 누군가를 만나기 쉽지 않다"며 "산부인과에서 결혼이 더 늦어지면 임신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급해 데이트 앱을 설치했다"고 한탄했다.
■로맨스스캠 범죄 주의
온라인에서 데이트 상대를 찾는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앱)이 인기를 끌면서 가짜 신분을 내세운 일명 '로맨스스캠'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로맨스스캠은 온라인에서 만난 이성을 유혹하고 금전을 뜯어내는 신종 사기 수법이다. 호감을 갖고 만난 상대방의 사기행각에 평생 상처를 입지만 처벌 및 단속이 쉽지 않아 주의가 요구된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데이트앱 시장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앱 시장 분석업체 앱애니 조사 결과 지난해 구글과 애플에서 게임을 제외한 한국 소비자 지출 상위 10개 앱 중 4개가 데이트앱이었다. 수백 개 앱이 활성화되고 있는 가운데 회원 수가 무려 400만명에 이르는 앱도 있다.
데이트앱은 이성을 만나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가입 시 이름과 나이, 직업, 사진 등 개인정보를 기재하고 원하는 이성을 고른 뒤 대화, 만남까지 가능하다. 문제는 개인정보를 허위로 작성할 수 있어 가짜 신분으로 상대를 속이고 접근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일부 앱은 기업 재직증명서 등 철저한 신상을 요구하지만 대부분은 간단 확인만 이뤄진다.
최근에도 데이트앱으로 알게 된 여성 3명에게 접근해 돈을 뜯어낸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남성은 의사를 사칭한 뒤 결혼을 전제로 만나자며 총 1115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남성은 무직에 사기 전과도 다수였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온라인상에서 호감을 가져 신원확인도 없이 돈을 보냈다"며 "데이트앱에 올린 사진부터 이름까지 모두 거짓이었다"고 전했다.
데이트앱을 이용한 사기가 발생해도 단속 및 처벌은 어렵다. 업체 측은 데이트앱이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만남이 시작되지만 실제 사기 등 범죄는 오프라인에서 이뤄져 제재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모 데이트앱 개발업체는 "가입과정에서 휴대폰 번호 인증, 가입 이후 페이스북 인증, 구글 사진 검색 인증 등을 통해 허위 프로필을 걸러낸다"면서도 "(하지만) 완벽하지 않다.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일은 업체가 막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법적인 해결책 마땅하지 않아
결혼이란 말에 속은 피해자들은 물리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호소하지만 구제가 어렵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만 혼인빙자간음은 형사상 처벌대상이 아니라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김영미 변호사는 "혼인빙자간음죄가 폐지돼 단순 성관계에 대해 처벌할 수 없다. 하지만 혼인을 빙자해 금품을 받아 재산상이익을 취하면 사기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행법상 성관계에 동의하는 건 그 사람 판단영역이다.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로맨스스캠 범죄가 성행하는 만큼 데이트앱 이용 시 주의를 당부했다.
건국대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는 "10년 전 외제차, 가짜 명함을 이용하던 결혼사기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발전하며 바뀌었다"며 "온라인상에서 믿고 싶은 대로 보는 확증편향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결혼사기가) SNS를 이용했는데 최근 데이트앱 이용자가 많아지며 범행수법도 바뀐 것 같다.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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