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은 나쁘다 답 정해놓고 ‘따라만 하라’니 무리수 속출..최적 에너지믹스 추구해야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 변화로 올여름 지구촌 북반부는 가마솥이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 평균기온이 1도 올랐다는데 이 정도다. 전문가들은 탄소배출을 안 줄이면 금세기 말엔 3도 오른단다. 미래 세대가 겪을 고통을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 발등에도 불은 벌써 떨어졌다. 연일 열대야가 이어지면서 전력수급에 비상이 걸리면서다. 지난주 경북 영천 등 일부 지역에서 40도를 웃돌았는데 전력예비율은 52개월래 최저치인 7%대로 떨어졌다. 자칫 블랙아웃(대정전)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를 짓는 소리는 요란한데….
결국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진흥을 골자로 한 문재인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이 기로에 선 형국이다. '바람의 섬' 제주도에서 빚어지고 있는 진풍경을 보라. 풍력발전 설비가 느는 만큼 이를 '백업'하기 위한 화력발전도 같이 늘고 있다. 바람이 그쳐도, 거꾸로 너무 많이 불어 과부하가 걸려도 풍력발전이 불가능해서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글로벌 에너지기업인 BP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2.2% 증가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톱3'였던 미국과 일본, 독일 모두 배출량이 줄어드는 추세와 달리 우리는 역주행이다. 더욱이 '탄소 제로'로 알려진 태양광발전이 기실은 원전보다 훨씬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역기능을 드러내고 있다. 패널 설치와 부품 공급 과정에서 탄소를 내뿜을 뿐만 아니라 탄소를 흡수하는 숲까지 훼손하면서다.
재생에너지가 기저발전을 감당할 수 없음은 분명해지고 있다. 풍력이든, 태양광이든 현재 기술력으론 대용량 전력을 상시 공급할 수 없어서다. 최근 방한한 온실가스 배출권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로버트 스타빈스 교수(하버드대)도 지적했다. "현 상황에서 탈원전은 결국 화석연료로 회귀를 의미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고.
그런데도 정부는 '탈원전 공약 방어'에만 급급한 인상이다. 최대 전력 사용량이 수요예측을 연일 웃도는데도 상점들이 문 열고 에어컨을 가동해도 모른 체한다. 한술 더 떠 며칠 전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적정 전력예비율 축소 필요성까지 제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원전 가동사항에 대해 왜곡하는 주장이 있다"고 한 뒤였다. 전기절약 캠페인을 벌여도 모자랄 판에 탈원전이 전력난의 원인으로 비칠까봐 허세를 부리는 격이다.
이쯤 되면 정부의 탈원전 드라이브는 시쳇말로 '답정너'(답은 정해졌으니 넌 대답만 해) 수준이다. 오죽하면 '영혼 없는' 어느 공직자가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의 회사 이름에서 원자력을 빼는 아이디어까지 냈겠나. 원전이 한수원 매출의 대종을 차지하는 마당에 홍길동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게 하는 블랙코미디다.
물론 원전인들 문제가 없겠나. 안전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은 제쳐두더라도 그렇다. 당장은 경제성이 있다지만 폐기물 처리가 두고두고 부담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온갖 부작용과 경보음이 울리는데 탈원전 일변도로 과속하는 건 우매한 짓이다. 정치나 이념이 아니라 과학의 잣대로 보면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상당 기간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 역할이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최적의 에너지믹스 포트폴리오를 짜는 게 가장 합리적 선택이다. 에너지원별 장단점과 기술혁신 추이를 살피면서 말이다. 이 세상에 완벽하게 '착한 에너지'도, '나쁜 에너지'도 없는 법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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