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 조장 미디어로 규제 필요 vs. 개인의 자유 규제 말도 안 돼
TV를 켜고 리모컨을 돌리면 '먹방(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 장면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유튜브, 아프리카TV 등의 동영상 플랫폼에서 '먹방'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은 바 있다. 먹방의 인기에 힘입어 지상파 및 여러 종편 채널들은 쿡방(요리하는 방송) 프로그램도 앞다퉈 제작하고 있다. 먹방과 쿡방 모두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게 들어가지만 높은 화제성을 보이는 장점이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먹방 규제 관련 청원만 무려 130건을 넘어섰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캡처 화면
■'먹방 규제'에 엇갈린 반응.. 국민청원 게시글 130건 돌파
가히 '먹방시대'로 불릴 만한데, 때아닌 먹방 규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24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가 비만관리 종합대책'의 일부 내용에서부터 시작됐다. 해당 내용은 '최근 먹방과 같은 폭식조장 미디어로 인한 폐해가 우려됨에도 이에 대한 모니터링과 신뢰할 만한 정보제공이 미흡하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2019년부터 미디어 관련 규제가 강화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어 보건복지부는 폭식조장 미디어(TV, 인터넷 방송 등)·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의 발표 이후 여론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비만을 조장할 수 있는 먹방을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부가 심하게 간섭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로 나뉜 것.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먹방 규제 관련 청원만 무려 130건을 넘어섰다. 한 청원 게시자는 "먹방을 보는 것은 개인의 자유인데, 먹방을 보고 폭식해서 비만이 된다고 규제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또 다른 게시자는 "병적으로 마른 사람은 먹방을 보면서 큰 위로를 얻는데 정부는 비만인만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공무원 준비생 김정현(28·가명)씨는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집에 들어가 야식을 먹을 때 '먹방'을 보면서 위로를 얻는다"며 "먹방을 보는 것은 개인의 자유기 때문에 정부에서 규제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직장인 안진현(34·가명)씨는 "1인 방송을 보다 보면 구독자 수를 늘리려고 10인분의 음식을 무리해서 먹는 경우가 있다"며 "어린이들이 봤을 때 무심코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계속되는 논란에 복지부는 "단순한 '먹방 규제'가 아니라 과도하게 폭식을 조장하는 먹방에 대해 앞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외에서 상상초월 인기끄는 'mukbang(먹방)'..규제하면 타격?
일각에서는 해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먹방'을 규제하면 한국 식품 수출길이 막힐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아프리카TV, 유튜브 등 실시간 인터넷 스트리밍 시스템을 통해 전 세계로 송출 가능한 한국의 먹방은 유럽, 북미, 동남아시아에서 큰 화제가 됐다. 특히 한국 드라마와 K팝의 한류 영향으로 떡볶이, 김밥, 비빔밥, 순대 등의 음식이 먹방을 통해 외국에 소개됐다.
지난 2016년 10월 미국 CNN은 한국의 먹방을 '사회적인 식사'라고 소개했다. 음식 선택 후 채팅방에 접속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새로운 트렌드로 본 셈이다. 실제 유튜브에 'mukbang(먹방)'을 검색하면 외국인들이 직접 촬영한 다양한 먹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채팅창에도 다수 외국인들이 먹방을 시청한 감상평을 남기고 서로의 느낌을 공유한다.
유튜버 '영국남자'는 지난 2014년 지인들과 함께 불닭볶음면을 먹는 영상을 올려 700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해당 영상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외국인들은 연이어 불닭볶음면 먹는 영상을 게재했다. 먹방에 힘입어 불닭볶음면은 지난해 삼양식품이 1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먹방을 규제하면 한국 음식을 소개할 통로가 줄어들어 식품·유통업계가 고스란히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털어놨다.
■비만방지에 힘쓰는 외국.. '비만세', '설탕세' 정책 추진
외국에서는 비만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추진하고 있을까. 대표적인 것이 '비만세(Fat Tax)'다. 비만세는 살찔 염려가 큰 정크푸드(열량은 높은데 필수 영양소가 부족한 식품), 패스트푸드 등에 대해 별도로 부과하는 세금을 뜻한다.
비만세에 대해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 2011년 덴마크는 최초로 비만세를 도입했지만 시행 1년 뒤 폐지됐다. 폐지한 이유는 비만세에 해당하는 식품들이 주로 저소득층이 많이 소비해 비만세를 부과할 시 경제적 격차가 더욱 커질 것을 우려해서다.
미국, 멕시코, 프랑스, 영국 등에서는 비만을 일으키는 탄산음료에 설탕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과거 국내에서도 비만세 도입을 검토한 바 있다. 지난 2011년 보건복지부는 건강에 이롭지 않은 음식에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정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정책 반영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2022년까지 41.5% 추정 비만율을 2016년 수준의 34.8%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지역사회와 연계해 모바일, 웨어러블 등 첨단 IT 기술 등을 활용한 온라인 비만관리 서비스 확대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sjh321@fnnews.com 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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