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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제재 버티던 러시아, 미국의 잇따른 추가 제재로 휘청

서방 제재 버티던 러시아, 미국의 잇따른 추가 제재로 휘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AFP연합뉴스
지난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의 경제제재를 버텨오던 러시아 경제가 이달 미국이 연이어 내놓은 추가 제재로 인해 다시금 휘청거리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미국이 지난달 정상회담에서 좋은 대화를 나눴음에도 불법적인 제재를 가했다며 보복을 예고했지만 이미 유가 침체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에 휩싸인 경제를 살릴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달러 대비 러시아 루블 가치는 8일(현지시간) 전일 대비 3.3% 떨어진 65.602루블을 기록한 뒤 다음날 다시 1.6% 떨어져 66.667루블을 나타냈다. 이는 2016년 이후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루블 가치는 올해와 이달 들어 각각 13.5%, 6.6%씩 내려갔다.

■ 연이은 제재에 시장 불안
루블 폭락은 8일 공개된 제재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미 국무부는 이날 발표에서 지난 3월 영국에서 발생한 전직 러시아 간첩 암살 기도 사건에서 쓰인 생화학 무기가 과거 러시아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밝혔다. 국무부는 러시아가 1991년 제정된 국제법을 어기고 자국민에 대해 치명적인 화학무기나 생화학무기를 사용했기에 오는 22일부터 러시아에 '국가 안보와 관련된 품목 및 기술'을 수출하지 않는 등 제재를 시행하겠다고 예고했다.

같은 날 러시아 일간지 코메르산트는 미 상원에서 '크렘린의 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는 법(DASKAA)'로 알려진 러시아 제재 법안이 입법 준비를 거치고 있다며 해당 법안의 초안을 공개했다. DASKAA는 지난 2016년 미 대선 당시 러시아 정부의 개입을 응징하기 위해 기획된 법안으로 러시아의 에너지 관련 사업이나 재계 인사 등을 상대로 시행하는 광범위한 제재를 담고 있다. 다국적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의 릴리트 게보르기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뉴욕타임스(NYT)에 이번 국무부 제재가 지난 4월 미국이 2016년 대선 개입과 관련된 러시아 기업들을 제재했던 것보다 수위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 간의 제재와 보복이 심해지면서 주요 에너지 분야의 장기 투자에 불확실성이 커졌고 이는 전반적인 투자 활동 둔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제재가 잦아지면서 미국이 더한 행동도 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화끝 제재맞은 러, '경제전쟁' 각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9일 브리핑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영국에서 발생한 (암살 기도)사건에 러시아 정부가 관련됐다는 어떠한 주장도 전적으로 거부하고 러시아는 화학무기 사용과 어떤 관련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제재는 수용할 수 없는 불법적인 조치이며 앞서 미국이 부과한 제재는 모두 국제법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10일 캄차카 반도 인근을 방문해 "미국이 은행 및 화폐 제재를 추가 도입한다면 우리는 이를 경제전쟁 선언으로 간주할 것"이라며 "모든 방법으로 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또한 러시아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6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적어도 표면적으로 좋은 관계를 약속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번 조치가 헬싱키 회담에서 시작된 "건설적인 관계 증진"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NYT는 러시아 정부 내에서 이번 제재가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꾀하는 트럼프 정부에 맞서는 기성 정치 및 정보기관의 공작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보복을 다짐하긴 했지만 수단이 많지 않다. 일단 의회 쪽에서는 미 우주산업에 쓰이는 러시아제 로켓 부품의 수출을 막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미국에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 NYT는 러시아가 2014년 이후 고유가에 기대 서방 제재를 이겨냈지만 이제는 장기적으로 영향을 피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