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영웅서 6선의원까지… 한미동맹 수호자 역할도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시대'의 패권주의를 계승하며 미 정통 보수의 상징으로 불렸던 존 시드니 매케인 3세 상원의원(공화·애리조나주)이 8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독불장군 같은 성격으로 2차례나 대전에 도전했던 그는 투병 중에도 일방적이고 고립적인 대외정책으로 기존의 보수 가치를 뒤집은 '수정주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끝까지 맞섰다.
CNN 등 외신들에 따르면 매케인 의원은 25일 오후 4시28분(현지시간)에 애리조나주 히든 밸리에 위치한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지난해 7월 말에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았던 그는 같은 해 12월부터 상원에 나오지도 못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앞서 가족들은 24일 발표에서 매케인 의원의 연명치료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1936년 8월 29일에 미국령 파나마 운하의 코코솔로 해군기지에서 태어난 매케인 의원은 전형적인 군인 가문에서 자랐다. 그는 해군 제독이었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따라 해군사관학교를 거쳐 해군 조종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매케인 의원은 1967년 베트남 하노이 인근에서 격추당해 목숨을 건졌으나 1973년까지 전쟁포로 생활을 겪으면서 팔에 영구적인 장애를 입었다.
매케인 의원은 1981년에 해군 대령으로 예편한 뒤 이듬해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뛰어들었다. 1986년에 상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지금까지 6선 의원으로 왕성한 정치 활동을 계속했다. 매케인 의원은 2000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그는 2008년에는 대선후보로 뽑혔으나 민주당 후보로 나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지고 말았다.
냉전 이후 미 정치권을 가로질렀던 그는 다양한 발자국을 남겼다.
매케인 의원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추종했고 미국의 무력행사를 옹호했다.
그는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을 지지했으며 이라크에 더 많은 병력을 남겨야 했다며 부시 정권을 비난하기도 했다. 또한 매케인 의원은 대북 강경파로 1989년 이후 3차례나 한국을 찾아 대북 압박 및 6자 회담 문제를 논의 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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