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이슈&사람]피우진의 리더십, 보훈처를 혁신하다

취임 15개월의 변화
중령 출신임에도 조직 장악, 보훈처 국정평가 ‘매우 우수’
수동적이던 보훈업무 탈피, 폭염대비 400여명 선제지원

[이슈&사람]피우진의 리더십, 보훈처를 혁신하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뛰어난 조직장악력과 소신 있는 조직운용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피 처장이 지난달 15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열린 73주년 광복절과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에 입장하며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우진 예비역 중령이 보훈 수장에 오른 지 1년3개월이 지났다. '불사조' '아마조네스(Amazones.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전사로만 이루어진 전설적인 부족)', 그에게 붙은 수식어는 강한 리더십을 토대로 한 뛰어난 조직장악력을 의미한다.

피 처장은 취임 일성에서 '변화와 혁신'을 제시하며 과감한 개혁 단행을 예고했다.

특히 '사후 약방문식'의 보훈업무 일처리를 지양하고, 보훈복지의 사각지대를 선제적으로 찾아 문제점을 미리 제거하는 등 보훈복지 강화에 조직운용의 역점을 뒀다.

피 처장의 합리적 소신과 '이유있는' 강단을 알 수 있는 한가지 일화가 있다.

한 30대 남성이 편의점에서 빵을 사고 돈이 모자라 콜라를 훔치다 붙잡혔는데, 그는 자신을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라 주장했다. SNS는 물론 청와대 청원 게시판까지 난리가 났다. 하지만 얼마 후 해당 남성이 해군 출신은 맞지만, 제1연평해전에는 참전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가 공식 해명을 내놓자 보훈처 내부에서도 조직 이미지 보호 차원에서 언론 해명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실무진들의 판단이 잇따랐다.

그러나 피 처장은 오히려 실무진에게 호통을 쳤다. 피 처장은 "그 남성도 우리의 보훈대상자가 아니냐. 왜 이 남성이 그 지경까지 가게 됐는지, 국가에서 그동안 뭘 했는지를 따져야 한다"라고 질책했다고 한다.

이후 보훈처의 정책방향은 크게 달라졌다. 보훈복지의 사각지대는 없는지, 미리 점검하고 찾아가는 '선제적 복지 강화'로 패턴이 바뀐 것이다.

그 결과 사상 초유의 폭염으로 온열환자가 급증했던 지난 8월, 보훈처 스스로 긴급 지원이 필요한 1인가구나 생활고를 겪는 보훈대상자를 사전 점검해 400여명의 긴급 지원 대상을 발굴,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

'콜라병 사건'이 준 교훈이 바탕이 됐다. 보훈처 한 직원은 "그동안 관의 마인드로 바라봤던 보훈정책을 재검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라며 "피 처장의 합리적인 업무스타일을 잘 보여준 사례로 회자된다"라고 소개했다.

피 처장은 소위 '다루기 어려운' 보훈처 산하 각급 단체에 대한 장악력도 확보했다는 게 관가의 정설이다. 웬만한 강단 갖고는 오히려 휘둘리기 쉬운 보훈처 산하 단체들의 기득권 유지 관행도 피 처장의 과감한 개혁과 혁신적 사고의 당위성에 거의 사라졌다는 평이다.

'유리천장'을 깨고 여성 직원을 대거 승진 임용시킨 것도 균형적 인사원칙의 결과였다. 피 처장 부임 이후 다양한 조직운용의 변화 시도가 결국 성과로 연결되면서 보훈처는 국정운영평가에서 '매우 우수' 기관으로 선정됐다. 처장도 장관급으로 격상됐다. 보훈처의 위상이 피 처장 부임 전과 후로 크게 달라진 셈이다. 여 간부출신으로서 남성 중심의 군 조직 내 고질적 관행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그의 소신 리더십이 녹아든 결과다.


한때 병마와도 싸워 이겨낸 피 처장은 보훈 대상자다. 2006년 전역 판정을 받고 군 조직 내 부조리와 끝까지 싸우고 도보로 전국 종주를 하면서 "내가 남긴 발자국이 다음 사람에게 길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의 보훈관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