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을 응대하는 감정노동자가 과중한 업무량으로 '월요병 현상'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쓰러졌다면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전날 충분한 휴식을 취했더라도 평소보다 일이 많이 쏠리는 월요일에는 육체적·정신적 부담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뇌출혈로 쓰러진 콜센터 상담원 김모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사건 기록과 원심판결 및 상고이유서를 모두 살펴봤으나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정한 사유를 포함하지 아니하거나 이유가 없다고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콜센터 상담원, 월요일 업무 中 돌연 뇌출혈
지난 2013년 11월 4일 월요일 오전, 인터넷 통신업체 콜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해온 김씨는 업무 중 호흡곤란과 손발이 마비되는 증상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당시 A씨의 근무시간은 주당 약 39시간으로 동료들보다 업무량이 많지 않았고, 쓰러지기 전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휴무를 가졌다.
A씨는 이듬해 2월 "월요일 오전은 평상시보다 업무량이 30% 이상 급증하고, 10월 영업실적이 급감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데다 불만전화 상담으로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껴 뇌출혈이 발병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그러나 공단은 업무상 재해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A씨는 결국 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에 뇌출혈이 발병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공단의 처분은 적법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발병 당일 A씨는 일상적인 상담전화를 수행했을 뿐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이나 악성고객을 응대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며 "통화량과 통화시간이 다소 늘어났더라도 이는 매주 월요일마다 반복되는 현상으로 오랜 기간 같은 업무를 해온 A씨에게는 익숙해진 근무환경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발병 직전 사흘 간은 근무가 없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며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에 비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업무량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과중한 업무 몰린 월요일에 긴장감 더 컸을 것"
2심 재판부는 판단을 달리해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발병 전날까지 휴식을 충분히 취했고, 예상지 못한 악성 민원 등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당일 급격한 업무증가가 뇌출혈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는 전화상담 업무를 수행하면서 고객의 요구사항이나 불만뿐만 아니라 협박·욕설·성희롱 등 악성 고객들의 민원까지 응대해야 했다"며 "약 10년간 업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속 회사에는 이를 대비할 상담사 보호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특히 '월요병 현상'을 언급하면서 A씨의 업무가 발병 당일인 월요일에 몰려있음을 주목했다.
재판부는 "월요일은 다른 평일에 비해 통화량 및 통화건수 모두 40% 이상이나 급격히 증가했다"며 "같은 근무환경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돼 있었던 A씨로서는 월요일에 출근해 평소보다 과중한 업무강도 및 업무량을 소화해야 한다는 긴장감 및 압박감이 더욱 컸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주치의나 법원의 감정의 모두 여러 정황상 업무상 스트레스가 뇌출혈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취지의 의학적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며 "이러한 견해는 공단의 내부 기관에 불과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보다 상대적으로 객관성이 높다"고 판시했다.
이번 소송은 법무법인 L&L의 정경일(43·사법연수원 40기)·김서연 변호사(37·변호사시험 2회)가 법률대리인을 맡아 승소를 이끌었다.
정경일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원고가 정신과 진료를 받은 기록이 없었고, 뇌출혈이 발생할 무렵에는 고객으로부터 폭언이나 협박 등을 받지 않아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대법원의 판단은 발병 당일 돌발적이고 급격한 업무환경의 변화가 없었더라도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재해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해 감정노동자가 업무상 재해를 폭넓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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