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지면 통계왜곡으로 비판, 나빠지면 정책실패라고 공격..통계는 '경제난국' 해법 안돼
홍장표 전 경제수석이 재임 중 보건사회연구원 등에 통계청의 1·4분기 가계소득 통계를 반박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만들게 했다. 이것이 정책 실패(소득분배 악화)의 책임을 통계 탓으로 돌리려 한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그 결과 통계오류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등장했다.
국가통계기관이 발표한 공식통계의 재검증을 통계 비전문기관에 의뢰한 것은 중대한 실수였다. 두 가지가 잘못됐다. 하나는 통계 불신을 조장한 점이다. 국가(청와대)가 통계청을 안 믿는데 어느 국민이 믿을까. 다른 하나는 경제를 정치로 해결하려 한 점이다. 통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통계청에 얘기하고 설득해 바로잡는 방식을 취했어야 한다. 문제의 통계에 소득주도성장에 불리한 내용이 들어 있어 강하게 반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부는 내년에 159억원의 예산을 들여 가계소득 통계의 표본과 조사방식 등을 바꾸려 한다. 또 하나의 무리수가 될 게 뻔하다. 만약 소득분배가 개선되는 쪽으로 지표가 나온다고 치자. 야당은 통계 왜곡이라고 비난할 것이고, 이런 비난은 여론에 먹혀들 가능성이 높다. 반대의 결과가 나오면 여당은 도로아미타불이다. 얻는 것 없이 속만 내보인 꼴이 된다. 야당은 소득주도성장 정책 실패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여당은 유리하지 않고, 야당은 불리하지 않다. 야당의 꽃놀이패다.
왜 이런 상황을 자초했을까. 경제의 감당능력을 생각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올린 것이 화근이다. 경상성장률이 4%대인데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16.4%나 올린 것이 타당한 발상인가. 최저임금은 모든 기업과 자영업자에게 직접 또는 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초적 가격변수다. 어느 한 기업이 임금을 몇 십% 올렸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소득 양극화를 치유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은 필요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어느 정도가 적절하느냐다. 암환자에게 적정량의 항암제를 투여하면 암세포는 죽고 환자는 살아난다. 그러나 치사량에 해당하는 항암제를 투여하면 암세포도 죽지만 환자도 죽는다. 소득주도성장의 과속 운전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그 무리수를 감싸 안으려다 보니 또 다른 무리수가 이어지고 있다.
학생이 기말고사 성적이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자꾸 출제가 잘못된 탓이라고 우긴다면?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이런 일이 청와대에서 일어나고 있다. 청와대는 올 들어 소득분배 지표가 나빠진 것이 통계 오류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내년에 159억원의 예산을 들여 가계소득 통계시스템을 고치기로 했다. 국민의 눈에 청와대의 이런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성적이 떨어지자 출제가 잘못됐다고 핑계 대는 학생을 보는 듯하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을 때 통계를 탓하는 것은 하책이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통계청의 자율에 맡겨 통계편제를 고치도록 하면 된다. 통계청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권력이 여기에 개입하면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계가 흔들릴 것이다.
정책을 방어하기 위해 통계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정책은 이미 생명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다 죽은 정책을 살려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공허하다. 청와대가 자초한 가계소득 통계 논란이 앞으로 문재인정부에 큰 짐이 될 것 같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