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폭염 '가정용 전기요금 폭탄' 없었다"

"폭염 '가정용 전기요금 폭탄' 없었다"
한국전력공사 직원들이 각 가정으로 발송될 7월분 전기요금 청구서를 분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에도 7,8월 전기요금 증가폭이 크지 않은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가정용 누진제로 전기요금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현실에선 폭염기간 전기요금이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2만원 미만 오른 가구가 전체의 절반(996만명)에 달했다. 7월말 8월초 폭염에 상당수 가정들이 누진제가 적용되는 전기요금을 걱정해 냉방장치를 절약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지난 2016년말 정부가 요금폭탄을 초래했던 '6단계 누진제'를 3단계로 개편한 것이 요금 증가폭이 크지 않았던 영향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누진제 개편, 산업용 경부하(심야)요금 인상 등을 포함한 전기요금 체제의 종합적인 개선 작업을 추진하는데 이번에 확인된 7,8월 전기요금 추세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가정용에만 적용되는 누진제 폐지 논란에 다양한 의견들이 나올 것으로 보인데, '누진제 공포'가 과도했다는 지적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한전은 이달 요금고지서에 7,8월 한시적 요금 인하분을 적용한다.

■전기요금 '5만원 이상' 오른 가구 6.2% 불과
10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에 따르면, 8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달간 검침을 실시한 전체 2011만가구 중에 49.5%(996만명)의 전기요금 증가액이 2만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요금이 전년대비 증가한 가구는 2011만가구의 80.2%(1612만가구)였다. 요금이 증가하는 가구는 전기를 평균 94kWh 더 사용했다. 8월 한달간 전체 가구의 전기사용량 증가분은 평균 63kWh였다.

전기요금이 2만원 미만으로 증가하는 가구는 49.5%다. 1만원 아래로 오른 가구는 28.7%(578만가구), 1만~2만원 오른 가구는 20.8%(418만가구)로 반반 정도였다. 전기요금이 2만~5만원 사이에서 오른 가구는 24.4%(490만8605가구)였다.

전기요금이 2만원 이상 오른 가구는 정부의 여름 요금인하 혜택을 보면 실제 증가액은 전년에 비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기요금이 많이 올랐다고 볼 수 있는 '5만원 이상' 오른 가구는 6.2%에 그쳤다. 10만원 이상 증가한 가구도 1.2%에 불과했다.

전기요금이 전년과 달라진 게 없는 가구는 2.5%(50만6283가구), 요금이 줄어든 가구는 17.3%(347만9021가구)다.

검침일이 1일이면 이날로부터 이전 30일 간의 사용량에 대한 요금이다. 예를 들어 8월15일 검침했다면 7월15일부터 8월14일까지 사용량이다. 8월 한달간 검침 결과여서 폭염기간을 7월20일께부터 한달 정도로 잡아도 대부분 포함되는 기간이다.

■산업부 "'요금 폭탄' 없었다..상당가구 요금인하 혜택"
이같은 7,8월 전기요금 추이로 봐선, 111년 만에 기록적인 이상 폭염에도 실제 전기요금 증가폭은 크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된다.

산업부 남경모 전력진흥과장은 "7,8월 올 여름 전체의 전기요금 집계 결과 그 증가폭은 예상보다 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에서 우려한 대로 '요금 폭탄' 수준은 아니다. 다만 전기요금 인상폭이 높지 않았던 이유 중에 누진제 전기요금 걱정 때문에 상당수 국민들이 에어컨을 절약해서 사용했다는 점도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남 과장은 "2016년말 누진제를 개편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또 요금이 늘어난 가구의 평균 전력사용량이 100kWh가 안됐다. 7,8월 정부가 누진제를 일시 완화한 구간에 포함된다. 요금이 오른 상당수 가구들이 요금제 한시 인하로 요금이 상당부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한전 관계자는 "올 여름 전기요금 사용이 전반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2016년 가정용 누진제가 6단계에서 3단계로 개편된 것이 사용량 대비 요금 증가액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중순 한전이 검침일 8월 1일부터 12일까지 조사한 873만6442가구 중에 75.5%(659만3499가구)의 전기요금이 증가했던 추세와 이번 8월 전체 검침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7월 초부터 8월11일까지 전기요금 평균 증가액은 2만원 선이었다.

앞서 정부는 연일 기록적인 폭염을 기록했던 올 여름, 가정용 전기요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기요금 누진제를 7∼8월 두 달간 한시적으로 완화했다. 1단계(1kWh당 93.3원)가 300kWh로, 2단계(187.9원)가 500kWh로 각 100kWh 늘어난다. 이 때문에 200kWh 이상에서 500kWh 이내의 사용자가 가장 많은 혜택을 보게 된다. 2단계 이상에 속하는 1512만 가구의 전기요금이 7∼8월 가구당 평균 1만원 감소할 것이라는 게 정부 추산이다.

누진제 폐지 논란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폭염이 절정을 달했던 지난달 초까지 가정용에만 '요금폭탄' 우려로 여름철 한시적인 요금인하의 '땜질 처방'을 할 게 아니라, 누진제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었다. 그러나 실제 올 여름 전기요금이 이상 폭염에도 불구하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오른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가정용 누진제에 대해 '폐지'보다 '개선' 쪽에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커졌다.

동시에 이 참에 전기요금 제도의 허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누진제 요금폭탄' 걱정 때문에 더워도 냉방장치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다는 다수 국민들의 불만에 대해 정부가 설득력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수십년간 왜곡되어온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와 가정용 누진제를 함께 개편하는 게 형평성이 맞다는 주장이다. 산업용 경부하 요금(오후 11시~오전 9시)은 1kWh당 53~61원(여름철 기준)으로 가정용 1구간 요금(1kWh당 93.3원)보다 싸다.

또 고소득층 1인가구의 가정용 누진제로 최하 1단계 전기요금 할인 혜택을 받는 것이 국민 복지 차원에 합당한지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전기를 적게 써 주택용 누진제 최하 1단계 구간을 적용받는 가구의 경우 모두가 과연 저소득층에 해당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누진제를 개선하되 국민들에 미치는 영향을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지난달 "누진제를 손봐서 1400만 가구의 전기요금이 오르면 이들이 가만히 있겠나. (누진제 폐지는) 굉장히 쉽지 않은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