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이름 국군포로]下. 수십년 만에 고향 찾았지만 南서도 곤궁한 삶
南에 살아있는 생존자 29명, 탈북 못한 포로 300~400명
80대 후반 고령… 매년 줄어, 중국인 브로커 통해 넘어와도 사례비 내면 정착지원금 부족
의료혜택 가족은 지원 없어, 생계노동 떠안는 경우도 많아
이선우씨는 1953년 북한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2006년 5월 12일 탈북에 성공했다. 이씨는 인터뷰 중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국군포로 출신들의 어러움을 전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국군포로' 그들의 삶은 여전히 전쟁 중이다. 조국을 지킨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 한 평생을 북한의 탄광에서 고통스럽게 보내고, 목숨 걸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도 여전히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 미귀환 국군포로의 송환 문제와 남한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 대한 정부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에 남은 국군포로 출신 생존자 28명..탈북 못한 이들 대부분
2일 사단법인 물망초 국군포로송환위원회에 따르면 총 81명의 국군포로가 남한 땅을 밟았고, 현재 남은 생존자는 28명이다. 아직 탈북하지 못한 국군포로 생존자는 300~400명으로 추정된다. 남한에 있는 국군포로 생존자의 평균 나이가 80대 후반의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에 남아있는 생존자 수는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부가 파악한 6.25 전쟁 국군포로 및 실종자는 4만1971명, 이 중 포로교환 당시 돌아온 8726명과 전사처리자 1만3836명을 제외하면 실종자는 1만9409명으로 집계됐다. 북한은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수 만명의 국군포로가 북한에 억류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북한은 '전쟁포로문제는 정전협정 당시 해결됐다'며 여전히 국군포로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 북한의 태도에 역대 어느 정부도 국군포로 문제의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이 때문에 국군포로 출신들은 중국인 브로커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남한에 들어오는 형국이다.
강원도금화지구전투에서 포로로 잡혀 50여년만에 탈북한 이선우씨(88)는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면서 국군포로 출신들 사이에서는 경사가 났다. '이번에야 좋은 소식이 있겠지'라고 기대했다"며 "그러나 정상회담 일정이 끝날 때까지 국군포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었다. 내 나라, 내 땅에 3일만 살다가 죽으면 원이 없겠다는 심정에 탈북을 결심했다"고 토로했다.
■시장경제에 무지..남한 사회 적응 못해 어려움
목숨을 걸고 조국 땅을 밟은 국군포로 출신들도 여전히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우선 시장 경제에 대한 이해가 없는 탓에 발생하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국군포로 출신들은 북한에 억류된 수십년을 군복무 기간으로 인정받아 미지급 보수와 정착 지원금을 정부로부터 받는다. 인민군에 입대했거나 북한에서 노동당에 입당한 전적이 있는 경우 일정 부분 차감되며, 계급에 따라 적게는 4억원에서 많게는 7억원의 보상금이 주어진다.
정부의 보상금이 결코 적다고 할 순 없지만, 한국 돈의 가치를 모르는 국군포로 출신들은 목돈을 허무하게 날리는 일이 다반사다. 우선 탈북을 도운 브로커 몫으로 5000만~1억5000만원으로 돌아간다. 협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액수가 천지차이다.
당장은 돈이 없기 때문에 브로커들은 국방부에 '국군포로가 넘어왔다'고 연락을 취한다. 국방부는 국군포로의 신원을 조회한 후 브로커에 돈을 전달할 지 결정하는데, 이 과정에 20~30일이 소요된다. 조치가 늦어지면 북한으로 다시 붙잡혀 가는 경우도 있다. 올해도 국군포로 출신 한 명이 강제 북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브로커에 지급한 돈을 탈북 국군포로에 책정된 지원금에서 돌려받는다.
사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4년 탈북민을 상대로 한 '한성무역 사기 사건'이다. 2006년 탈북한 이씨도 당시 2억원을 뜯겼다. 이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국군포로 출신들은 12명, 피해금액은 30억원에 이른다. 사기를 당한 상당수가 기초수급자로 전락했다. 이 때문에 90살이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세차, 폐지줍기 등 '생계형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도 있다. 물망초로부터 매달 30~50만원의 생활비를 받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도 있다.
■의료혜택 비효율 지적도
현행 국군포로 출신들에 대한 의료지원 혜택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의료지원금은 국군포로 출신 본인에게만 연간 1000만원까지 지원된다. 그러나 고령의 아내 등 가족의 치료를 위한 비용은 지원되지 않아 결국 의료비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의정부에 살고 있는 국군포로 출신 김모씨(86)는 "무릎 관절이 아픈 아내를 위해 수지침을 배우려 매주 서울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현 물망초 위원장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어르신들이 혼자 힘으로 탈북했으면 정부가 모든 생활을 보장해줘야 한다"며 "기껏 28명 밖에 남지 않으셨는데, 배우자의 의료비도 지원해주지 않는 게 맞느냐"고 되물었다.
이씨는 "일년에 한번씩 부모님 산소를 찾으려 고향에 가더라도 세대가 바껴서 반가워 할 사람이 없다"며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국군포로다. 우리의 총사령관인 대통령을 만나 '아직 돌아오지 않은 국군포로들을 데려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꼭 한번 대통령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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