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부정하고 자신이 만든 허구세계 몰입 ‘리플리증후군’
#"OO대학교 졸업생입니다."
지난 2월 A씨(29)는 아르바이트 구직을 위해 서울 성동구의 한 편의점을 찾았다. 이미 수십번을 해왔던 대학생 연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A씨는 어느 순간부터 실제 그 학교 학생이 된 듯 했다. 주변에서 '명문대생 출신'인 자신을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에 A씨는 만족하며 더욱 더 확실하게 또 다른 자신을 연기했다.
신입생을 사칭해 대학 수십 곳을 떠돌던 20대 남성이 교도소 출소 후 다시 명문대 졸업생 행세를 하다 실형을 선고 받았다. '명문대를 다니면 시선이 달라진다'는 이유로 출신 대학을 속이는 점이 현실을 부정하는 리플리 증후군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리플리증후군이란 자신 현실을 외면하고 허구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현상을 뜻한다.
■출소 후에도 '명문대 졸업' 행세
서울동부지법 형사4단독 이관용 판사는 절도, 사문서위조, 점유이탈물횔령,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법조계에 따르면 2015년 교도소 출소한 A씨는 지난 2월 서울지역 한 편의점 구인광고를 보고 신분을 숨기기로 했다.
이미 대학 수십 곳에서 신입생 행세를 하다 '신입생 엑스멘'이란 인터넷 게시글로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력서 용지에 가짜 이름과 함께 서울지역 명문 대학인 'OO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이라고 쓰고 취업에 성공했다. 이후 열흘이 채 지나지 않아 편의점 금고에서 2차례에 걸쳐 현금 77만원 상당을 훔쳤다.
A씨의 거짓말은 계속됐다. 지난 3월에는 서울 강동구 모 가전업체에서 길거리에서 주운 신분증의 주인인 척 행세해 100만원이 넘는 핸드폰도 구매했다. 지난해 5월에는 "광주민주화항쟁 프로그램 참가비가 부족한데 4만원을 빌려주면 다음 주까지 갚겠다"거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돈이 급하게 필요한데 아르바이트 임금을 받는 대로 곧바로 갚겠다"라면서 피해자 2명에게 324만원 상당을 뜯어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절도죄, 사기죄를 포함한 동종 범행으로 여러 차례 형사처벌 전력이 있다"면서 "각각의 범행이 누범에 해당하는 점 등을 비춰보면 피고인에 대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A씨는 2014년 한 방송국의 시사다큐멘터리에 등장한 대학생 신입생 사칭 사건 당사자다.
그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전국 48개 대학에서 신입생 행세를 하며 선배들에게 밥을 얻어먹거나 숙박을 해결하다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물건을 훔친 끝에 징역을 살았다.
A씨는 수사기관의 조사과정에서 "학벌 콤플렉스가 심하다. 대학 신입생 모임에 가면 관심을 받는 것이 좋다"며 "명문대를 다닌다고 하면 사회적 시선이 달라진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과 거짓 구분 어려워"
A씨 같이 다른 사람 신분으로 현실을 사는 행위를 '리플리증후군'이라고 전문가는 진단한다.
학벌 같은 사회적 기준에 열등감을 느끼며 자신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리플리 증후군은 현실세계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부정하고 새로운 자신 모습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벌어진다"며 "현실자아가 없어지고 허구자아가 진실하다고 믿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로 성장과정에서 학력 등 열등감이 있으면 남을 속여서라도 인정받길 원한다"며 "이 과정에서 거짓말로 타인에게 금전, 정신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범죄적 성향과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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