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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일자리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고 자신한 핵심 근거에는 최근 고용보험 가입자가 늘어나는 데 있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가장 최근인 9월 고용동향을 보면 고용보험 피보험자 증가 등 일자리의 질이 개선되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도 9월 고용보험 통계를 바탕으로 '2016년 2월 41만 9000명 증가 이후 처음으로 40만명대 증가폭을 기록해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증가율을 달성했다'고 홍보해왔다.
이는 두 가지 측면으로 해석된다. 사회 안전망인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을 정도의 회사라면 일자리 질이 이미 높을 것이란 것이고, 또 하나는 보험 혜택을 통해 향후 일자리 질이 점차 높아질 수 있다는 측면이다.
하지만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 가입이 급증한 것으로 드러나 두 해석 모두 적용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계 관계자는 "이들의 근로환경이 열악한 걸 고려하면 일자리 질이 좋다고 볼 수 없다"며 "또 이들이 고용보험에 가입해도 실업급여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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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내는데 혜택은 없다?
29일 파이낸셜뉴스가 단독 입수한 고용노동부의 '고용보험 가입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초단시간 근로자의 가입 현황은 지난 6월 전년 동기 대비 2만 4008명, 7월 2만 7143명, 8월 2만 6806명 등 2만 명대 증가 폭을 유지했다. 올 9월에는 4만 3167명으로 껑충뛰었다.
덩치도 급격하게 커졌다. 초단시간 근로자 가입자 현황은 지난해 1월 12만 7000여명에서 올 9월 22만 6800여 명으로 1년 9개월 만에 약 10만 명(78.5%) 가량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주 15시간 이상, 40시간 미만 단시간 근로자는 32.2%(76만 8000명→101만 6500명), 주 40시간 이상 근로자는 3.5%(1064만 명→1102만 명) 각각 늘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7월 이후로 초단시간과 단시간 근로자 증가 폭이 컸기 때문에 고용보험 가입자 수 증가가 고용의 질의 증가라고 설명하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이 처럼 초단시간 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이 늘어난 건 자발적 요인이 아니었다. 지난 7월부터 고용보험 의무가입 대상에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도 당연 포함되도록 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용보험 가입을 놓고 현장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서울 목동에서 편의점을 하는 점주 A씨는 "최저임금이 오른 탓에 8월부터 주말 아르바이트생 3명의 근무 시간을 하루 7시간으로 1시간씩 줄였다"며 "주 14시간을 근무하면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었는데 이제 보험료 부담만 늘었다"고 했다. 편의점 알바생 B씨도 "근무 시간이 줄면서 임금도 같이 줄었는데 매달 고용 보험료만 나가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특히 문제는 초단시간 근로자는 고용보험의 핵심인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매주 2일씩 근무하는 초단시간 근로자가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 근무해야 한다'는 실업급여 수급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어서다. 수급 요건을 완화하는 개정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여당 의원이 발의했지만, 정부와 청와대가 제도부터 시행시키느라 입법 미비로 인해 이 같은 왜곡현상이 알바생 등 초단시간 근로자들의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 실업급여 혜택 없이 보험료만 내는 꼴이다. 박성우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고용보험은 실업급여 수급이 핵심"이라며 "그걸 못 받는다면 불이익하다"고 했다. 한국노총 이상혁 노무사도 "혜택 주지 않으면서 돈만 내라하는 건 정부의 사회보험 취지에 어긋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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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일자리 질 양극화 가능성" 우려
전문가들은 고용보험 상 맹점으로 일자리 질의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고소득층의 일자리 질은 더욱 좋아지고 오히려 (혜택을 못 받는) 어려운 근로자는 더 어렵게 됐다"며 "불완전한 일자리, 단기 일자리가 많아지면서 일자리 질은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준모 교수도 "고용보험은 사회안전망인데 가입만 하고 혜택을 못받는다면 '준조세'의 성격이 강하다"며 "초단시간 근로자들이 사회 안전망의 보호를 받는다는 착시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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