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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원합의체 “종교·양심적 병역거부 형사처벌 안돼“..판례 변경(종합)

대법 전원합의체 “종교·양심적 병역거부 형사처벌 안돼“..판례 변경(종합)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병역법 위반 등으로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2004년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유죄 입장을 견지해 온 대법원이 14년 만에 종전 판례를 변경한 것으로, 지난 6월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종교적 신념 병역 거부는 정당한 사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가 병역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씨(34)의 상고심에서 대법관 9(무죄) 대 4(유죄) 의견으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창원지법 형사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헌법상 국방의 의무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단지 국방의무를 구체화하는 법률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으로 정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이행을 거부할 뿐”이라며 “이들에게 형사처벌 등을 통해 집총과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판시했다.

반면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기존 법리를 변경해야 할 명백한 규범적, 현실적 변화가 없음에도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혼란을 초래한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특히 조희대, 박상옥 대법관은 “다수의견이 종교적 양심에 의한 병역거부의 경우에 적용될 것으로 제시하고 있는 요소들은 특정 종교의 독실한 신도인지를 가려내는 기준이 될 수 있을 뿐이지 양심적 병역거부자인지를 가려내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며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특정 종교에 특혜를 주는 결과가 생길 수 있으며, 이는 양심과 종교의 자유 보장의 한계를 벗어나고 정교분리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오씨는 2013년 7월 육군 현역병으로 입영하라는 통지서를 받고도 입영일인 2013년 9월 24일부터 3일이 지나도록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쟁점은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로 종교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1·2심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처벌 예외사유인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근거로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년 동안 결론을 내리지 못하다가 지난 6월 18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사건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계류 중인 사건도 무죄될 듯
법조계는 헌법재판소가 지난 6월 28일 병역의 종류에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내놓은 권고의견이 이번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당시 헌재는 "양심의 진실성이 인정될 경우 법원은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기 전이라 하더라도 입영거부 또는 소집불응 행위에 '정당한 사유'가 있음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법원이 이날 기존 판례를 변경하면서 각급 법원에 계류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은 모두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10월 31일을 기준으로 대법원에 계류중인 병역거부자 사건은 모두 227건이다. 하지만 이미 유죄가 확정돼 형을 마쳤거나 수형 중인 사람들은 소급적용이 되지 않아 재심이나 보상 청구를 받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다만 정부 차원에서 사면 복권이 이뤄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