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상 강행에 항의..28만명 2000곳서 시위
전국 주요도로 봉쇄로 마비..1명 사망·200여명 중경상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가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된 17일(현지시간) 낭트 쇼핑센터 진입로에서 시위대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이번 시위로 1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다쳤다. 시민들은 차량 필수품인 안전용 노란색 조끼를 입어 정부의 기름값 인상에 항의하는 표시를 했으며 프랑스 내무부는 약 28만명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집권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치솟는 연료값에 민심이 폭발하면서 프랑스 전역에서 반 마크롱 시위가 열렸다. 시위 과정에서 1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지난 주말 프랑스가 아비규환을 이뤘다.
고집스럽게 '제 갈길'을 가던 마크롱 대통령도 처음으로 머리를 숙였지만 유류세 인상은 그대로 가겠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유럽 맹주인 독일에 이어 프랑스의 중도파까지 흔들리면서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 프랑스 뒤덮은 '노랑조끼'
1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마크롱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기름값 상승으로 폭발하면서 프랑스 전역의 도로가 사실상 마비됐다. 정당이나 노동조합 등 전통적인 시위 조직 세력 없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 시위는 당초 예상보다 참가 인원이 크게 적기는 했지만 프랑스 전역에서 주요 도로를 점거하면서 정부에 큰 타격을 안겼다.
한국이 촛불을 들었던데 반해 프랑스 시위대는 연두색에 가까운 노랑 안전조끼를 입었다. 이날 시위대 이름도 '노랑조끼'였다.
17일 시위를 독려하고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한 사이트 '11월17일 차단'은 프랑스 전역이 '노랑조끼'로 덮여있는 지도를 보여줬다. 당초 100만명이 참가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이날 프랑스 내무부는 시위 참가 인원이 28만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프랑스 2000여 곳에서 시위가 일어나 사실상 전국이 시위대에 덮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17일 시위를 앞두고 엄정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시위 물결을 막지 못했다. 최대 2년 징역에 4500유로 벌금이 뒤따르는 도로봉쇄가 현실화했다. 시위 과정에서 아이를 병원에 데려다 주려던 엄마가 시위대의 제지로 병원에 갈 수 없게 되자 시위대를 차로 치어 한 명이 사망하는 사고까지 빚어졌다. 최소 227명이 부상을 입었고, 이 가운데 6명은 중상이다.
■ '부자 대통령'···지지율 추락
마크롱의 취임 뒤 개혁 드라이브는 노동개혁을 비롯한 구조조정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중산층 이하 유권자들의 불만을 높여왔다. 시위에서는 '부자들의 대통령'이란 말도 나오고 있고 "마크롱과 프랑스 간 관계는 깨졌다. 끝났다"고 분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여성이 올린 마크롱의 증세에 대한 비판 동영상은 600여만명이 시청했다. 이 동영상은 "엘리제궁(프랑스 대통령궁)의 접시를 바꾸거나 당신 자신을 위한 수영장을 짓는것 말고 (세금인상으로 불어난) 돈(세수)으로 무엇을 하겠느냐"며 마크롱을 비난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시민 3분의2 이상이 '노랑조끼' 시위를 지지하고 있다. 여론에 귀를 막은 대통령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한 시위 조직 관계자는 CNN에 시민들의 목소리가 대통령에게 들어가지 않고 있어 시위로 의사를 표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마크롱의 세금인상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 너무 무겁다"면서 "정당이나 노조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에 뭔가를 해야만 했다"고 시위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해 5월 취임 당시 62% 지지율을 보였던 마크롱은 거친 개혁과 자신과 측근들의 잇단 구설수로 지지율을 깎아먹었고 지금은 사상최저 수준으로 추락한 상태다. 지난 여름에는 대통령 경호원이 경찰로 위장해 시위진압에 나선 뒤 시위대를 무차별 폭행한 사실이 발각돼 곤욕을 치렀고, 그 뒤 대응에서도 오만을 드러내면서 마크롱의 핵심 지지층인 중산층이 등을 돌린 탓이다. 또 대도시 엘리트 층과 시골 빈곤층 간 골이 깊어진 것도 마크롱 지지율 추락의 또 다른 배경이다. 현재 마크롱 지지율은 26%로 곤두박질쳤다.
■불만 부추긴 기름값 급등
시위의 직접 배경인 유류세 인상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유가가 바닥을 기던 1월에 세금을 올렸지만 이후 국제유가가 뛰면서 기름값이 덩달아 오르자 그동안의 불만이 더해지면서 1년이 다 돼서야 폭발한 것이다. 프랑스는 1월에 경유에는 L당 8센트(상팀), 휘발유에는 4센트 유류세를 더 물렸다. 내년에는 경유에 6.4센트, 휘발유에 2.9센트가 더 붙는다.
국제유가 상승과 유류세 인상이 겹치면서 프랑스 주유소의 기름 소매값은 급등했다. 프랑스석유산업연맹(UFIP)에 따르면 경유는 올해 16% 뛰었다. 1년전 L당 평균 1.24유로에서 현재 1.48유로로 올랐다. 지난달에는 1.53유로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 기간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배럴당 60달러에서 10월초 86.07달러까지 뛰며 20% 넘게 올랐다.
시위대 역시 국제유가 상승세가 기름값을 끌어올린 주된 원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마크롱 정부가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의 환경정책을 지속해 화석연료 세금을 높이는 것에 불만을 깆고 있다.
마크롱은 일단 한 발 물러났지만 유류세 인상은 되돌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민영방송 인터뷰에서 앞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유류세 인상을 철회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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