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서울의 한 여대에서 학생이 총학 후보 공약을 훑어보고 있다. /사진=오은선기자
사회 화두로 떠오른 '페미니즘'을 두고 대학가에서 남녀공학과 여자대학 총학생회가 서로 상반된 성적표를 받고 있다.
남녀공학에서 여학생의 권익과 인권을 대변하던 총여학생회는 페미니즘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로 존폐 기로에 섰다. 반면 여대에서는 페미니즘을 앞세운 총학 후보들이 속속 당선되면서 여성운동의 강도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여대에 부는 '페미 총학' 바람
29일 대학가에 따르면 지난 28일 숙명여대에서는 총 투표자 중 96.37%에 달하는 찬성표로 선거운동본부 '오늘'이 최종 당선됐다.
학생들은 오늘이 내세운 '여성해방' 공약에 크게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오늘의 선본은 지난 22일 합동공청회에서 "숙명인들과 함께 여성해방을 위해 앞장 설 준비가 돼 있다"며 "민주주의의 진정한 완성인 여성해방을 위해 나설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같은 발언이 큰 호응을 얻었다. 학생 이모씨(23)는 "총학이 페미니스트라는걸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여성운동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페미니즘 총학' 바람은 숙명여대뿐 아니라 다른 여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당선된 이화여대 총학생회 역시 성폭력 가해교수 징계 절차에 학생 참여 보장, 캠퍼스 종합 안전 대책 마련 등을 주요공약에 포함시켜 성폭행·여성 인권 이슈에 대응했다. 동덕여대 총학생회는 성인권위원회 설립, 성신여대 단독 선본은 월경권 보장 등으로 여학생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여대 내의 이런 바람과 달리 남녀공학은 학교 내 총여 폐지를 위한 투표가 잇따르고 있다.
■"문제의식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지난 25일 연세대에서 30대 총여가 당선돼 재개편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성균관대와 동국대를 비롯한 서울 대부분의 대학에선 총여 폐지가 결정됐다.
총여 폐지 분위기는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 현상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온라인 공간에 올라온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혐오 글을 시작으로 여학생들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총여에 대한 반발이 학내 다수 여론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일례로 동국대에서는 익명 게시판에는 '페미니스트는 사회악', '학생회비가 왜 총여 운영에 쓰이냐' 등의 비난 발언이 쏟아졌고, 한양대에서는 총여학생회장 후보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상에서 성희롱 댓글에 시달리기도 했다.
남녀공학과 여대를 다니는 학생들의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 차가 학생회 투표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여성의 인권은 여대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너무나 주요한 의제"라며 "학교에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연결된 여러 차별에서 제대로 된 대책을 이야기해주지 않는 학생회는 존립의 근거를 의심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여대와 공학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지양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대는 진보화되는데 공학은 보수화된다는 시각으로 보기 어렵다"며 "총여가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페미니즘 분위기가 약해져서라기 보다 여학생들도 총학만으로 권리를 대변할 수 있다는 학교내 분위기와 투표율 자체가 낮아지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위기 등을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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