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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속 인물] '참을 수 없는 비난의 무거움' 베나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News 속 인물] '참을 수 없는 비난의 무거움' 베나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AP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간) 유대교 명절인 하누카 연휴를 맞아 집권 리쿠드당 집회에 참석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자신에게 부패 혐의를 제기한 경찰을 상대로 "모략으로 우리를 공격하려 든다"고 비난했다. 경찰의 기소 요구는 이달까지 올해만 벌써 세 번째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같은 장소, 같은 때에 똑같은 말을 했다. 내년에 총선을 앞둔 4선 총리는 2년째 자신이 임명한 경찰들과 싸우고 있다. 도대체 그는 왜 이런 지루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일까?

네타냐후 총리는 1949년 10월 21일에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사학자이자 유대민족주의(시오니즘) 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4살 되던 해에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고등학교를 마치고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육군에 입대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대테러부대 사이렛매드칼에 들어가 1968년 베이루트 공항 공습 작전, 1972년 사베나항공 571편 구출 작전 등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전역했다. 군대를 마친 그는 이후 미국으로 이동해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입학했고 학교를 다니던 중에 욤키푸르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특수부대에 복귀해 비밀 작전을 수행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1975년과 이듬해에 MIT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는데 사이렛매드칼 지휘관이었던 친형 요나탄이 1976년 엔테베 사건 당시 순직하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그는 졸업 후 컨설팅기업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경제 분석가로 일했고 1978년에 이스라엘에 돌아와 형을 기리는 대테러 연구기관을 설립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후 모셰 아렌스 전 국방장관의 눈에 들어 1982년에 주미 이스라엘 부대사로 임명됐으며 2년 뒤 대사로 승진해 트럼프 일가와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88년에 이스라엘에 돌아와 리쿠드당에 입당한 뒤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1993년에 당 총재에 올랐다. 1996년 총선에서 47세의 나이로 이스라엘 최연소 총리가 된 네타냐후 총리는 이듬해 미국 클린턴 정부의 압박에 밀려 헤브론 지역 내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의 거주구역을 확정하는 헤브론 협정을 맺었다. 그는 1998년 와이리버 협정 등 팔레스타인과 타협하는 협정이 이어지면서 당 내 입지가 좁아지자 조기총선으로 도박을 걸었으나 실패, 당권을 내려놔야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2002년 외무장관으로 정계에 복귀해 재무장관 등을 역임했으며 2005년 가자지구 철수 결정에 반발해 장관직을 사임했다. 그는 같은 해 12월에 다시 리쿠드당 총재에 올라 2009년 총선에서 승리했고 2013년과 2015년 총선에서 각각 연임에 성공하면서 이스라엘 최장기 재임 기록을 세웠다. '강경 보수'를 표방하는 네타냐후 총리는 팔레스타인과 이란의 세력 확대에 대항해 이스라엘을 지키는 '보호자'를 자처했고 대중들은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안보를 내세우는 그를 지지했다. 문제는 네타냐후 총리가 스스로 만든 보호자 이미지에 너무 심취했다는 점이다.

지난 2016년 7월부터 그의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이스라엘 경찰은 각각 케이스 1000·2000·3000·4000이라고 불리는 4건의 사건에 집중하고 있다.

일단 케이스 2000과 4000은 서로 꼬리를 물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 지지자이자 세계 3대 카지노재벌 중 한명인 셸든 아델슨은 지난 2007년에 친정부 일간지 이스라엘하욤 창간에 관여했다. 아델슨의 자금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하욤은 저가공세로 일간지 시장을 석권했다. 한편 2015년 4선에 성공한 네타냐후 총리는 통신부를 직접 조종하면서 비판 여론 검열에 나섰다. 경찰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이스라엘하욤의 부상으로 재정난에 시달리던 유력 일간지 예디오트아하로노트에 거래를 제안했다. 자신을 비방하는 기사를 줄이면 아델슨에게 부탁해 이스라엘하욤의 발행부수를 줄여주겠다는 것이었다(케이스 2000). 비판여론을 참을 수 없었던 네타냐후 총리는 2014년에도 비슷한 조작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그가 2014년 대형 통신사 베제크의 지배주주인 샤울 엘로비치에게 위성TV 예스 인수를 허가해 주는 대가로 엘로비치가 운영하는 뉴스 사이트 왈라에서 정부 비판 기사를 지우도록 요구했다고 판단했다(케이스 4000). 케이스 1000은 네타냐후 총리가 해외 유력 사업가들로 부터 시가와 샴페인 등 약 3억원어치에 달하는 선물을 받고 대가로 면세 혜택을 줬다는 혐의다. 이에 대해 네타냐후측은 친구간의 단순한 성의 표시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케이스 3000은 네타냐후 총리가 직접 관여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사촌들과 최측근 장성들이 연루된 사건이다. 경찰은 독일 티센크루프와 약 2조2410억원 규모 잠수함 계약에서 이들이 뇌물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이외에도 경찰은 총리 부인 사라 네타냐후가 2011~2013년 3년간 총리 공관에 음식 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외부 식당에 공금 1억원을 지불했다며 사기 및 배임혐의를 적용해 수사 중이다.

경찰이 제기한 기소들이 재판으로 이어지려면 아일렛 샤케드 법무장관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에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달 가자지구 충돌 직후 연설에서 하찮은 당쟁을 따지기에는 안보 상황이 너무 위태롭다며 불안을 부추겼다. 지난 11월 중순 여론조사에 따르면 리쿠르당은 당장 총선을 치를 경우 국회 120석 가운데 29석을 얻어 여전히 제 1당 자리를 유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에 뉴욕타임스(NYT)는 비록 네타냐후 총리가 높은 지지를 업고 있지만 스스로 신성불가침의 보호자 역할에 집착해 정치적 위험을 키우고 있다며 내년 11월 총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