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걷던 길, 시민 품으로..영국대사관에 서울시가 제안
문화재청의 협조도 고마워..낮은 곡선미 고궁 뒤안길 일품
"덕수궁 돌담길은 이제 서울에서 가장 걷고 싶은 거리가 됐습니다"
김학진 서울시 안전총괄본부장(사진)은 지난 7일 막혀있던 덕수궁 돌담길을 연결시킨데 대한 감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사실 덕수궁 돌담길은 서울시가 돌담길 연결 계획을 발표하기전까지는 끊겨 있었는지, 어디까지 연결돼 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덕수궁 돌담길은 지난 1959년 영국대사관이 점유하면서 철문으로 막혀 일반인의 통행이 일부 제한됐다. 제한됐던 덕수궁 돌담길은 전체 1100m 길이 가운데 170m 구간이다.이 길은 1900년대 대한제국 시기에 고종이 선원전으로 이동하거나, 제례의식 등 행사 때 이용하던 역사공간이기도 하다.
김본부장은 "폭은 좁은 길이지만 우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길이었다"며 그 의미를 되새겼다.
그는 "이 덕수궁길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거기서 다시 우리가 이야기를 쌓아가며, 또한 앞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길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역사적 공간을 연결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라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
세종대로와 연결된 대한문에서 서울시의회로 가기 전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면 영국대사관 정문이 길을 막고 있다.반대편 쪽에서는 정동길 정동분수대에서 미대사관저를 지나 돌담길이 이어지는데 계속 올라가다보면 영국대사관 후문이 있는 막다른 골목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영국대사관 정·후문으로 길이 막혀 되돌아오면서도 길이 끊겼다는 사실을 잘 몰랐고, 되돌아가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김 본부장은 서울시가 영국대사관에 덕수궁 돌담길 연결 사업을 제안할 때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서울시는 영국 대사관이 1959년부터 사용했던 돌담길과 대사관 소유 부지에 있는 업무빌딩 일부공간을 보행로로 조성하자고 처음 제안했다"고 전했다.
이전까지는 아무도 이런 제안을 한 적이 없었다는 것. 사실 이런 제안을 해야할 곳은 중앙정부였다. 그런데도 서울시가 실마리를 풀어낸 것이다.
지난해 8월 끊겼던 덕수궁길 170m가운데 100m를 우선 개방했고, 남은 70m 연결을 위해 이번엔 서울시는 문화재청과 손을 잡았다.
김 본부장은 "문화재 내부에 통행로를 내는 것은 문화재 관리 측면에서 어려운 결정이었음에도 문화재청에서 흔쾌히 협조해 줬다"며 문화재청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그는 "이번에 개방된 덕수궁 내 경사진 보행로는 주변과 어울리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보행데크로 설치했으며 평평한 곳은 흙으로 포장해 자연미를 살렸다"고 설명했다. 특히 덕수궁 방문객과의 동선을 분리하기 위해 낮은 목재 난간을 설치해 걷는 사람들이 주변 경관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이 보행로와 연결되는 영국대사관 정문부터 세종대로까지 돌담길도 새로운 문양을 넣어 다시 포장하고 담장과 어울리는 볼라드를 설치해 사람들이 걷는데 불편함을 없앴다.
이번에 연결시킨 돌담길은 대한문 주변 돌담길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다가온다.
우리가 예전에 알고 걷던 돌담길은 높고 반듯해 아름다우면서도 위엄이 있다면 이곳은 낮고 곡선이 많은 담장이 특색이다.
마치 고궁 뒤안길의 정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 길을 걷다보면 이 길을 오래도록 지키고 있는 회화나무 한그루가 모진 풍파와 고난을 겪어온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김 본부장은 "덕수궁 돌담길 연결을 위해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시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가장 큰 힘이 됐다"며 "이젠 온전히 연결된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 가족들과 함께 거닐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dikim@fnnews.com 김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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