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일본 도쿄 나가타초의 자유민주당(자민당) 본부 7층 회의실. 일본 정부가 국제포경위원회(IWC) 탈퇴를 공식 발표하기 전 열린 자민당 포경 관계 회의에 고래 고기가 들어 있는 카레와 튀김이 제공됐다. 참석자들은 입맛을 다셨다.
"정부의 (IWC)탈퇴 결정에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날 회의를 마친 와카야마현 다이지 마을 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소형포경협회 회장이자 IWC 탈퇴를 적극 추진해온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 역시 "열심히 노력해서 지방의 목소리를 관저에 전해준 결과"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전날 각의에서 IWC 탈퇴를 결정한 데 이어 이날 이 같은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내년 7월부터 상업 포경을 재개하고 국제포경규제협약으로부터 탈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내년 1월 1일까지 IWC 사무국에 탈퇴 방침을 보고하면 내년 6월 30일 이후 상업적 고래잡이가 가능해진다. IWC 탈퇴로 더 이상 남극해에서 연구 목적의 포경은 할 수 없지만 일본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서 상업적 포경은 재개할 수 있게 된다. 남극해에서의 포경은 국제조약상 금지되지만 IWC 회원국에 한해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1946년 고래 보호를 위해 설립된 IWC는 1986년부터 판매 목적의 상업적 포경을 금지해왔다. IWC 회원국인 일본도 표면상으로는 이 같은 원칙을 따르면서 '과학적 조사 목적'이란 명목으로 고래잡이를 지속해 국제적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9월에는 상업적 포경을 재개해기 위해 브라질 플로리아노폴리스에서 열린 IWC 총회에 '상업적 포경 허용안'을 제출했지만 미국과 호주 등의 반대로 안건이 부결되는 좌절을 겪게 됐다. 이는 결국 일본의 IWC 탈퇴 선언으로 이어졌다.
이번 탈퇴 결정을 두고 일본 안팎에서 격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호주 정부는 "극도로 실망했다"며 탈퇴 철회를 촉구했고, 윈스턴 피터스 뉴질랜드 외무장관은 "고래잡이는 구시대적이고 불필요한 관행"이라고 비판했다. 그린피스의 일본담당 샘 안네슬리 역시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지 못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일본 언론들도 IWC 탈퇴 결정이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상업적 포경 허용안 가결에 실패한 뒤 "모든 옵션을 검토하겠다"는 입장만을 반복하다 각의에서 결정한 바로 다음날 발표했다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27일자 사설에서 "국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도, 심의회 등의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며 "다각적인 검토가 결여된 채 정치 결착을 서둘렀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업적 포경 재개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고 일본의 대외 이미지만 나빠질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1962년 23만t에 달하던 고래고기 소비량은 지난해 3000t에 그쳤다. 내년도 51조엔의 정부 지원을 받는 일본의 소규모 포경 산업이 자립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 점에서 IWC 탈퇴 결정이 국내정치용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아베 신조 총리와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내년 지방선거 및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국가주의자들과 포경 산업 지역을 겨냥한 노림수라는 지적이다.
아베 총리와 니카이 자민당 간사장은 IWC 탈퇴에 크게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니카이 간사장의 선거구인 와카야마현 내 다이지 마을은 전통 포경의 탄생지이자 포경 산업의 허브이다. 아베 총리의 선거구에는 현대 포경의 탄생지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가 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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