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전성시대다. 요즘 젊은이들은 점심은 안 먹어도 커피는 마신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4000~5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이다.
커피 이야기를 하자면 대한제국 황제 고종을 빼놓을 수 없다. 여러 문헌에 따르면 고종은 '가배차' '양국탕'으로 불렸던 커피를 꽤 즐겼다고 한다. 아관파천 당시 독일계 러시아인 손탁의 권유로 처음 커피를 접했다는 게 정설이다. 고종에 얽힌 커피 이야기는 김탁환의 소설 '노서아 가비'(러시아 커피라는 뜻)에 제법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다.
'날개'의 작가 이상은 직접 다방(茶房)을 운영하기도 했다. 연인이었던 기생 금홍과 함께 종로에 차린 제비다방은 박태원, 김유정 등 동료 문인과 경성의 모던보이들이 드나들던 휴식처였다. 제비다방은 이상이 세 살 때부터 스물세 살 때까지 살았던 서울 통인동 옛 집터에 복원돼 있다.
광복 전후엔 서울 명동이 커피의 메카였다. 그중 클래식 음악을 주로 틀던 '돌체'가 제일 유명했다. 음악다방을 표방한 돌체는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무용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문화적 해방구였다.
1980~90년대엔 밴딩머신이 내놓는 자판기 커피가 유행했다. 점심식사 후 직장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커피자판기 앞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장기하가 노래한 '싸구려 커피'는 아마도 종이컵에 든 이 커피였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에스프레소가 유행한 건 2000년대 이후다. 스타벅스, 커피빈 같은 외국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투썸플레이스, 엔제리너스, 이디야 같은 토종 브랜드 커피숍도 성업 중이다.
지금 옛 서울역사(문화역서울284)에 가면 커피에 얽힌 전시회를 만날 수 있다.
내달 17일까지 하는 '커피사회'전이다. 여기선 커피와 관련한 다양한 자료와 커피를 테마로 한 미술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장 2층에선 '근대'를 주제로 한 옛날커피를 제공한다고 하니 '공짜 커피' 한 잔 하러 가도 좋을 듯하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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