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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역린과 국민 사이

逆鱗

[윤중로] 역린과 국민 사이

얼마 전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의 질문이 논란이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왜 이런 사달이 났는지 이해가 안 된다. 기자 개인의 주관이 그가 쏟아낸 말과 글에서 얼마나 배제되고, 객관화시켰는지 여부를 계량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기자직군이라는 공공적 기여를 토대로 공식적 자리에선 기자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

여권이 문제 삼은 건 정책효과를 놓고 논란의 중심에 있는 소득주도성장 정책기조라는 민감한 의제에 대한 질문 화법과 방식, 톤이었다. 아마 "경제기조를 바꾸지 않는 그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다"고 한 게 예의에 어긋나고, 화법이 도발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특히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단도직입적'이라는 문장이 매우 귀에 거슬렸던 듯하다.

기자의 공공성과 직업인으로서의 경계상 모호성을 핑계 삼아 해당 기자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소 표현이 거칠고 투박했더라도 공식석상에서 나온 질문인데 너무 정치공세화된 것 아닌가 싶다. 물론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한국어의 묘미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표현하고, 뉘앙스를 전달하느냐에 따라 듣는 이의 감정 스펙트럼은 매우 넓어진다.

자칫 이번 일을 계기로 질문할 때마다 질문의 뉘앙스와 복선 등을 '사전설계'해야 하는 심리적 위축을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사회통념상, 언론윤리상 천박하거나 예의범절에 어긋나지 않은 수준에서 이뤄진 질문이라면 설령 그게 마음에 안 들더라도 국민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때론 귀에 거슬리더라도, 때론 성에 차지 않더라도 작은 소리라도 귀기울이는 게 국정을 공동으로 책임지는 청와대와 여권의 책무 아닐까. 우리의 언론자유지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더구나 문재인정부는 어느 정권보다 열린 귀와 성장정책에도 차용할 만큼 '포용'을 상징처럼 핵심적 가치로 생각하지 않나.

오히려 열린 마음과 열린 귀로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비록 아픈 지적이지만 상대방을 끈질기게 설득, 이해시키는 게 '세련된' 대처일 것이다. 특히 논란을 키운 건 탈춤을 춘 정치권이다. 여권은 마치 역린을 건드렸다는 듯이 흥분하면서 '교육 잘못받았다' '싸가지보다 실력부족' '인성 문제'라고 십자포화를 날렸고, 야권은 '물러서지 마라' '좌파정권을 겨냥한 최고의 견제구'라며 영웅화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 등 정치공세의 장(場)으로 치환시켰다.

일각에선 '야당 영입설'이라는 '천박한' 정치논리의 잣대를 들이대기도 했다. 기자는 그저 기자일 뿐이다. 그렇다고 완벽한 인격체는 더욱 아니다.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국민의 대변인'(代辯人)이다. 물론 개인의 정치적 편협성, 가치관, 취향 등을 말과 글에 숨기며 미필적 고의를 도발하는 '트로이의 목마'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이 시점에, 어떤 목소리도 넓은 아량으로 포용하고, 시대를 한발 앞선 혜안(慧眼)과 성심(誠心)으로 백성을 이끈 세종의 리더십인 '적솔력'(迪率力:한발 나아가서 거느리며 이끈다)이 아쉽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