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째 '풀무질 일꾼' 은종복 대표의 작별 인사②]
은종복 대표, "학교 앞 책방이 우리 사회를 제대로 이끄는 원동력"
지속적 자립 방안으로는 '정기 후원, 도서 정가 납품, 사회구조 변화' 제시해
▲ 은종복 대표가 인문사회과학 책방이 필요한 이유와 지속적으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사진=정호진 인턴기자
은종복 대표(54)는 1993년 4월부터 25년간 풀무질의 일꾼으로서 성균관대학교 앞 인문사회과학 책방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지난 6일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풀무질이 폐업 위기에 놓였다고 밝혔다. 그러던 중 20대 청년 삼인방이 책방을 인수하게 되며 풀무질은 계속해서 인문사회과학 책방으로서 명맥을 잇게 됐다.
(▶관련기사 : 폐업위기 서점 '풀무질'.. 새로운 얼굴로 명맥 잇는다 [기사 하단 링크])
은 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운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풀무질과 같은 책방이 필요한 이유와 지속적으로 인문사회과학 책방이 자립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 우리 사회에 인문사회과학 책방이 필요한 이유
▲ 풀무질의 책읽기 모임 시간표, 풀무질은 책을 파는 책방의 역할 뿐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공부하는 공간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사진=정호진 인턴기자
은 대표는 “대학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학문을 연구하거나 정부의 정책의 잘잘못을 가리고 지적할 때 뜻이 생기는 기구인데 오늘날 대학은 그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학사회가 기업문화를 이끌어야 하는데 어느 대학에나 있는 ‘산학협력단’은 이름부터 기업이 대학을 이끌고 있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대학 1, 2학년까지는 인문 교양을 쌓아 고등학교 때까지 했던 틀에 박힌 공부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지금은 1학년 때부터 취업을 위해 매달리고 있다”며 “대학 앞 책방들이 사회를 제대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은 대표는 덴마크의 사례도 언급했다. “덴마크 사람들은 국회와 다른 ‘국민의회’를 통해 정책을 만드는데 이러한 정책이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며 “이러한 힘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힘에서 나온다. 덴마크는 1940년대부터 90% 넘는 사람들이 모여 책읽기모임을 해왔다. 이것이 숙의민주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학교 앞 인문사회과학 책방 ‘그날이오면’의 김동운 대표도 인터뷰를 통해 “인문사회과학 책방은 우리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방안을 공부하고 함께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필요성을 설명했다.
김 대표는 “지금 많은 청년들은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에 따라 단편적인 목적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이처럼 단편적인 요구사항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현재의 사회구조를 바꾸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현재 우리사회가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공간은 많이 부족하다”며 “사회의 구성원들이 각각 자신의 일터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연대하며 사회의 발전방안을 모색할 때에 비로소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다”며 인문사회과학 책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인문사회과학 책방이 살아남기 위한 방안
▲ 책방 풀무질의 모습. 은종복 대표는 풀무질에 4만여권의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비치되어있다고 전했다. /사진=정호진 인턴기자
은 대표는 인문사회과학 책방이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기 위한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첫 번째로 은 대표는 CMS 등을 통해 정기적으로 후원을 받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이전부터 손님들이 정기후원을 받는 방법을 얘기했지만 ‘책 사주는 것이 후원이다’라며 거절해왔다. 하지만 우리 책방이 최근 유행하는 책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전, 사회과학 서적 위주로 취급하다보니 책을 파는 것만으로는 책방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답했다.
‘그날이오면’의 김 대표도 “’그날이오면’ 후원회가 있다. 인문과학서점을 이용하며 여러가지 고민을 하고 공부한 기억들을 갖고 계신 분들은 이러한 고민들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너무나 잘 안다”며 “그런 분들이 애정을 갖고 후원해주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은 대표는 “국가시책으로 책의 정가 판매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는 부분 정가제를 시행하기 때문에 75%의 가격만 받고 납품해 마진이 남지 않는다. 지난해 정독도서관에도 1,000권 넘게 납품했지만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며 "국가 기관에서라도 납품하는 도서들에 대해 정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프랑스나 독일 같은 경우에는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판매할 경우 20%의 마진을 보장해주고 일반 서점의 경우 40%를 보장해주는데 우리나라는 그 반대”라며 “정부에서 책의 정가 판매를 보장해줘야 우리 같은 책방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은 대표는 우리 사회의 구조가 ‘노동시간은 줄이고 생각하는 시간은 많아지는 구조’로 변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 책을 읽고 생각할 시간이 없다. 오늘 취재하러 온 기자도 세 시간 밖에 못 잤다더라"고 말하며 “노동시간이 줄어야 여유롭게 책을 읽고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답하며 사회 구조가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hoxin@fnnews.com 정호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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