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로 완공된 세운상가는 '세상(世)의 기운(運)을 모은다'는 의미를 담았다. '불도저 시장'으로 불렸던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이 지었다.
일제가 소개공지(疏開空地)로 남겨놓은 이른바 '종삼(종로3가)'은 서울시의 골칫거리였다. 태평양전쟁을 벌이던 일제는 서울이 공습받을 것에 대비해 종묘 앞에서 남산 아래까지 1㎞ 남짓한 구간을 빈 땅으로 남겨뒀다. 6·25전쟁 이후 이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무허가 판자촌과 윤락가가 형성됐다.
이곳을 싹 밀어버리고 대형 주상복합 건물을 짓는다는 아이디어를 낸 이가 김현옥이다. 설계는 건축가 김수근이 맡았다. 당시로선 낯선 중정(中庭)이 마련되고 테라스 형식의 보행자 통로가 남에서 북으로 연결됐다. 상가 중간중간에는 현대, 청계, 대림, 진양 등 아파트가 들어서 도심의 새로운 주거 공간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세운상가의 전성시대는 길게 잡아봐야 1980년대까지다. 1970년대 후반부터 개발된 강남에 기세를 빼앗긴 세운상가는 이후 '빨간책'을 파는 음란물 유통의 본산으로, 중고기기를 파는 전자상가 밀집지역으로, 서울의 녹지축을 뚝 끊어버리는 '도심의 흉물'로 쇠락해갔다.
세운상가 일대 재정비 사업이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2006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남산 녹지축 복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발에 착수했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종로 쪽 현대아파트만 철거되고 백지화됐다. 이후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세운재정비촉진지구사업'을 수립했지만 진척 속도는 더뎠다. 이곳을 터전으로 생업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저마다 달라서다.
이번에 사달이 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업구역 내 을지면옥 등 노포(老鋪)를 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서울시가 사업 보류를 선언했다. 그러자 사업 추진을 학수고대하던 쪽에서 들고 일어났다.
노포 등 기존 생활유산을 보존한다는 대원칙은 맞다고 본다. 그렇다고 마냥 사업을 늦추는 게 상책은 아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행정의 첫번째 원칙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