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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에스크로 계좌

2월에 열릴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비핵화 해법이 나올까. 워싱턴타임스(WT)는 1월 28일 미국이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주도로 이를 위한 '특별한 대북 경제 패키지'를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핵 폐기 조치를 유인할 수단으로 '에스크로(Escrow) 계좌'를 거론했다.

에스크로는 '조건부 양도증서'를 뜻한다. 1997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돼 주로 부동산 거래에서 쓰이던 에스크로 제도는 지금은 각종 상거래에 두루 활용된다. 우리는 2012년 인터넷 쇼핑몰의 이 제도 가입을 의무화했다. 소비자가 물건 값을 은행 등 제3자에게 보관했다가 배송이 확인되면 판매자 계좌로 입금하는 식이다.

미·북 협상은 현재 평행선이다. 비핵화 조치 없이 제재완화는 없다는 미국과 상응조치 보장 없이 비핵화를 먼저 할 수 없다는 북한이 맞서면서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식의 신뢰부족을 우회할 카드가 '에스크로 계좌'다. 오스트리아 등이 이를 개설할 '제3국'으로 거론된다. 여기에 현금을 예치해두고 북한이 단계별로 비핵화 조치를 실천할 때마다 돈을 인출해 보상하는 방안이다.

이는 미국식 '인센티브 살라미' 전술이다. 동결·신고·검증·폐기 등으로 핵 이슈를 잘게 썰어 시간을 끄는 북한에 대한 맞불이다. 미국은 제3국 계좌에 돈을 넣을 '큰손'으로 한국을 지목할 공산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북한이 비핵화하면) 한국과 일본이 지원할 것"이라고 공언했었다. 핵 협상도 상거래처럼 여기는 트럼프로선 '에스크로 계좌'가 '신의 한 수'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의심 많은 김정은이 이 미끼를 덥석 물지 여부를 놓고 전망은 엇갈린다. WT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 계좌를 김 위원장을 향한 '황금 항아리'에 비유했다. 그러나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은 "핵무기를 정권 생존을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북의 완전 핵포기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봤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