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 몸에 핏줄 연상 붉은 줄..조종당하는 모습 직관적 묘사
경각심 심어주려는 의도지만 임산부와 어린이 볼 수도 있는데
흡연자가 기호품 선택 사실 무시..'흡연 노예' 표현 부적절 지적도
#. 최모씨(31)는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갔다가 상영 전 극장 광고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전자담배 공익광고가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광고에서 흡연자의 몸에 붉은 줄이 뚫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공익을 위해 충격 요법을 쓴 것은 알았지만, 청소년도 볼 수 있는 극장이나 TV에서 이렇게 수위가 높은 광고를 상영하는 것이 적절한지 최씨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말부터 2월까지 상영한 전자담배 금연캠페인 '흡연노예'편. 보건복지부 제공
전자담배 공익광고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늘고 있는 전자담배 이용자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려는 의도이지만 지나치게 섬뜩한 이미지를 심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자담배 공익광고 수위 높아"
1일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담배 시장에서 전자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2.2%에서 9.6%로 4배 이상 높아졌다. 판매량도 3억3200만갑으로 전년 대비 4.2배 늘었다. 이에 복지부는 늘어나는 담배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21일부터 지난달 말까지 '흡연노예'라는 제목의 금연캠페인 광고를 TV와 극장 및 각종 온라인 매체를 통해 방영됐다.
이 광고에서는 전자담배 흡연자를 '마리오네트(꼭두각시) 인형'으로 형상화했다. 담배의 중독성과 '덜 해롭다'는 전자담배 회사의 광고 전략에 조종당하는 흡연자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 복지부의 설명이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관계자는 "전자담배가 이슈가 되고, 사용이 늘고 있어 경각심을 높이고자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공익성을 고려하더라도 표현 수위가 지나치게 높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핏줄을 연상시키는 붉은 줄이 흡연자들의 몸을 뚫고 들어오는 묘사 등이 혐오스럽다는 것이다. 해당 광고가 실린 공식 유튜브 영상에는 '광고가 너무 징그럽다', '광고를 속수무책으로 봐야 하는데 기분이 좋지 않다'는 댓글도 달렸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관련 청원을 올린 한 게시자도 "(전자담배의)위험성과 유해성은 이해하지만, TV를 시청하는 비흡연자로서 괴롭다"며 "임산부와 어린이가 볼 수 도 있는데 수위가 많이 높은 것 같다"고 했다.
■"모두 피해자라는 메시지"
이와 함께 '흡연 노예', '조종당하지 말라'는 광고 내 문구에 대해서도 시비가 일고 있다.
흡연자인권단체를 표방하는 '아이러브스모킹' 측은 해당 광고에 대해 "흡연의 중독성을 인정하더라도, '담배'라는 기호품을 흡연자 스스로 선택했다는 사실이 철저히 무시됐다"며 "흡연자는 자아도 없고 판단력도 상실한 '흡연노예' 취급을 받게 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논란이 많은 전자담배의 유해성 등 신종담배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광고를 제작한 건강증진개발원 측은 '전자담배 업체에 속지 말라는 의도'라고 해명했다. 건강증진개발원의 한 관계자는 "흡연자도 역시 피해자라는 메시지로, 본인도 모르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내용을 전하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광고 수위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광고를) 보시는 입장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청소년 등에게도 흡연 예방 차원에서 집행하는 것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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