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들이 고교 무상교육을 놓고 문재인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주 공동성명에서 "고교 무상교육은 국가가 책임지고 예산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세종시에서 열린 기자회견장 벽에는 "고교무상교육,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제2의 누리과정 사태로 비화되지 않기를'이라고 쓴 글귀도 보였다. 교육감협의회는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들이 회원이다. 이 가운데 보수성향은 대구·경북 교육감 둘뿐이다. 진보가 주도하는 협의회가 문정부와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이례적이다.
박근혜정부 시절 교육감들은 누리과정 예산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 중앙정부는 어린이집 무상보육비 중 일부를 지방교육청이 대라고 압박했다. 당시 진보 교육감들은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에 협조를 구했다. 그래서 해마다 정기국회 막바지엔 보육예산을 놓고 여야가 승강이를 벌였다. 그러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뒤 보육예산은 전액 중앙정부, 곧 국가가 대는 걸로 정리가 됐다.
문재인정부가 고교 무상교육을 지나치게 서둔 게 잘못이다. 원래는 2020년 고3부터 무상교육을 실시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불쑥 시기를 1년 앞당겼다. 유 부총리는 2019년 2학기 고3을 시작으로 2020년에 고2, 2021년에 고1까지 혜택을 넓히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아직 관련 예산도 확보하지 못했다. 예산을 짜는 기획재정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넉넉하니 교육부와 교육청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고교생 무상교육엔 한해 2조원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한번으로 그치는 일회성 예산이 아니라 해마다 비슷한 규모의 세금이 필요하다. 이처럼 중대한 교육정책을 교육부가 왜 이토록 허술하게 다루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행여 내년 봄 총선, 나아가 2022년 봄에 실시될 차기 대선을 의식한 결정이라면 실망이다. 국가 백년대계인 교육을 선거전략으로 전락시킨 격이기 때문이다.
누리과정 대립 때 정부는 교육청 예산이 넉넉하다고 주장했다. 교육청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버텼다. 그 통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엄마·아빠들만 속이 까맣게 탔다. 고교 무상교육이 같은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돈이 없으면 헛일이다.
사실 선 예산 확보는 상식이다. 문재인정부가 이 상식을 깨뜨리지 않길 바란다. 정 안 되면 고교 무상교육 시기를 2020년으로 원위치하는 게 낫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