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혜화역 일대에서 열린 여성에 대한 약물범죄 규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법원 앞에서는 여성모임 '우리의증언' 주도로 200여명이 참석해 고(故) 장자연씨 성접대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한 참가자는 "일상 생활 속에서도 여성을 성상품화의 대상으로 보는 남성이 많다"며 "이를 막기 위해 용기를 내자"고 호소했다.
#2. 지난 15일 1033개 여성단체가 공동주최한 '김학의 전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 장자연씨 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는 "최근 '버닝썬 사건', '정준영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여성의 몸을 남성의 유흥거리로 소비하며 유대와 연대를 공고하게 하는 오랜 문화와 산업이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버닝썬 사태' '김학의 성접대 의혹', '고 장자연 사건' 등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사건들이 '뿌리깊은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본질이 있다'고 여성계는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표적인 페미니즘 집회인 '혜화역 시위'가 다시 열리는 등, 관련 집회도 활발해지는 모습이다.
온라인 상에서도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엄중한 처벌을 통해 가부장적 사회에서 권력층의 오랜 '성적 대상화 카르텔'을 해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 권력층 범죄"
28일 여성계 등에 따르면 '버닝썬' 사건, 김 전 차관 성접대 의혹, 고 장자연씨 사건 등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달 들어서만 5건 이상 열렸다.
여성시민단체는 집회를 통해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에서 촉발된 마약 관련 성범죄, 몰래카메라 유포 등의 사건과 김 전 차관 사건·고 장자연씨 사건 등의 본질이 모두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남성 권력층의 범죄'에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이른바 '혜화역 시위'가 성격을 바꿔 두 달여 만에 재개된 것은 상징적이다. 혜화역 시위는 지난 2일 '남성 약물 카르텔 규탄시위'라는 이름으로 두 달만에 부활했다.
혜화역에서는 지난해 총 6차에 걸쳐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린 바 있다. 다만, 이번 시위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 주최 측은 혜화역이 여성인권 운동을 상징하는 장소로 의미가 있다고 보고 집회 장소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최 측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남성들은 그들만의 은어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고, 불법 강간 약물을 사용해 여성을 상품으로 거래했다"고 비판했다.
이 밖에도 여성 단체들은 고 장자연씨 사건, 김 전 차관 의혹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참여연대도 최근 논평을 통해 "김학의 성폭력 사건과 고 장자연씨 사건 등이 모두 남성 권력자들에 의해 여성의 인권과 존엄이 유린된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양성평등교육원 변신원 교수는 "지난해 '미투' 운동이 역차별, 무고죄 등으로 이어지며 담론이 변질돼 왔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훨씬 많은 성폭력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최근의 집회는) 권력과 관계 없이 동일 범죄에 대한 동일한 처벌을 해달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 장자연 문건' 목격자로 알려진 배우 윤지오씨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고 장자연씨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온·오프라인서 철저한 수사 촉구
여성계 뿐 아니라 온라인 상에서도 권력층의 여성 대상 성범죄에 대한 철저한 수사 및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고 장자연씨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청원에 70만명 가까이 동의했다. 증인 윤지오씨에 대한 신변보호, 김 전 차관에 대한 철저 수사를 요구하는 청원도 답변 요건을 충족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관련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피해자를 중심으로 언급되는 성범죄 양상도 고쳐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부 관련 집회에서는 '고 장자연 사건'이 아닌 '방 사장 사건', '김학의 성접대 사건'이 아닌 '성폭력 사건'으로 표현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어렵게 만드는 '2차 피해' 우려와 함께, 가해자에 대한 비판 의식을 높이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변 교수는 "강력 범죄와 달리 성범죄는 관성처럼 피해자가 우선 거론된다"며 "이런 지적은 1990년대부터 있어 왔다. (이번 사건을 통해) 성폭력이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범죄라는 인식이 커져야 한다"고 했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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