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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초 4개 단위 재정의, 20일 공식 시행

인류 역사상 최초 4개 단위 재정의, 20일 공식 시행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개최된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CGPM)에서 SI 기본단위 중 킬로그램(kg), 암페어(A), 켈빈(K), 몰(mol)의 재정의가 2018년 11월 16일 최종 의결되었다. 세계 측정의 날인 오는 20일 역사상 최초로 국제단위계(SI)의 7개 기본단위 중 4개 단위의 개정된 정의가 공식 시행된다.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세계 측정의 날인 오는 20일 역사상 최초로 국제단위계(SI)의 7개 기본단위 중 4개 단위의 개정된 정의가 공식 시행된다.

지난해 11월 16일에 열린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CGPM)에서는 기본단위인 킬로그램(kg), 암페어(A), 켈빈(K), 몰(mol)의 재정의가 의결됐다.

이로써 7개의 기본단위는 전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기본상수를 정의에 활용하게 된다. 1875년 5월 20일, 도량형의 전 세계적인 통일을 처음으로 논의한 미터협약(Meter Convention) 이래로 정확히 144년 만에 모든 기본단위가 불변의 속성을 갖게 된다.

인류 역사상 최초 4개 단위 재정의, 20일 공식 시행
SI 기본단위.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이번 단위 재정의에는 플랑크 상수(h), 기본 전하(e), 볼츠만 상수(k), 아보가드로 상수(NA)라는 고정된 값의 기본상수를 기반으로 킬로그램, 암페어, 켈빈, 몰을 새롭게 정의한다. 단위가 비로소 안정성과 보편성이 확보된 불변의 기준으로 자리하는 것이다.

표준 과학자들은 "거대한 변화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미래 과학기술과 산업을 한 단계 앞당기는 중요한 변화지만, 일상생활에서 알아차릴 정도의 변화는 없으므로 혼란 또한 없을 것을 의미한다.

단위 세계의 지각변동이 당장 우리의 일상에 미치는 혼란은 없다. 킬로그램원기가 130년 동안 변한 수십 마이크로그램(㎍)은 머리카락 한 가닥 수준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1kg의 정의가 바뀐다 한들 체중계가 가리키는 내 체중 숫자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바이오나 전자 소자 등의 미세 연구 에서 마이크로 수준의 오차는 치명적인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의약품의 미세한 분량 차이는 효능 및 안전과 직결되며, 금과 같이 질량으로 값을 매기는 고가의 물품은 미세한 측정 오류가 경제적 이익에 큰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상의 혼란은 최소화하면서 과학기술의 극한까지 정교해지는 것이 단위를 연구하는 측정과학의 목표다. 탄탄히 다져진 기반 위에 세운 집이 견고하듯, 단위를 새롭게 정의하고 구현하는 기술력을 갖춘 국가만이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인류 역사상 최초 4개 단위 재정의, 20일 공식 시행


■질량 단위 킬로그램(kg)

질량의 단위인 킬로그램(kg)은 130년 만에 새롭게 정의됐다. 1kg은 1889년 백금 90%, 이리듐 10%의 합금으로 만든 '국제킬로그램원기'의 질량을 정의로 고수해왔다. 이 원기둥 모양의 인공물은 유리관에 담겨 아직도 프랑스 국제도량형국(BIPM) 지하 금고에 보관 중이다. 지금까지 각국의 표준기관들은 이 원기와 똑같은 복제품을 만들거나 구입해 국제적 기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10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서 프랑스에 있는 국제킬로그램원기의 질량이 수십 마이크로그램(㎍) 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 세계적으로 보급된 원기들 또한 복제 시기에 따라 질량에 미세한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단위가 불안정하고,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일상생활과 모든 산업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측정값을 신뢰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제 킬로그램의 새로운 정의에는 플랑크 상수(h)라는 고정된 값의 기본상수와 물체의 질량을 연결하는 '키블 저울(Kibble Balance)'을 사용한다. '기계적 일률과 전기적 일률은 같다'는 원리를 이용해 플랑크 상수를 구하면, 플랑크 상수의 단위에 킬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어 정확한 킬로그램을 정의할 수 있다.

키블저울은 질량, 중력, 전기, 시간, 길이 등 수많은 측정표준의 종합체로서 모든 측정의 불확도가 10-8 수준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키블저울을 제작해 운영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6개국뿐이며, 미국과 캐나다 등의 표준기관이 측정한 플랑크 상수 평균값(6.626 070 15 × 10-34 J s)이 국제표준으로 채택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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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물의 삼중점 셀.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온도 단위 켈빈(K)

열역학적 온도 단위인 켈빈(K)은 '절대온도'라고 일컫는다. 0켈빈은 모든 분자의 운동에너지가 정지될 때의 온도를 나타낸 것이다. 0K은 -273.15℃와 같은데, 흔히 사용하는 섭씨(℃)가 아니라 켈빈을 기본단위로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 근본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켈빈의 정의는 '물'이라는 특정한 물질에 의존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동안 1K은 물의 삼중점에서 열역학적 온도를 273.16으로 나눈 값으로 정의했다. 물이 얼음(고체)·물(액체)·수증기(기체) 상태로 동시에 존재하는 고유한 온도를 '물의 삼중점'이라 한다. 물의 삼중점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상태 중 가장 정확하고 재현성이 우수해 지금까지 온도를 정의하는 기준으로 사용돼왔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물이라는 물질 자체가 가진 불안정성까지는 제어할 수 없었다. 온도의 기준이 물에 포함된 원자들의 동위원소 비율이 달라지는 등의 이유로 미세하게 흔들린 것이다.

새로운 켈빈의 정의에는 볼츠만 상수(k)를 활용한다. 측정을 통해 볼츠만 상수의 값을 구하면 그 단위에 켈빈이 포함돼있어 수식을 통해 정확하게 켈빈을 정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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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구진은 2015년 암페어 재정의에 기초가 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단전자 펌프 소자를 개발했다.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류 단위 암페어(A)

암페어는 정의가 불분명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면이 있었다. 정의에 포함된 '무한히 긴', '직경을 무시할 수 있는' 평행한 직선은 현실 세계에서 결코 만들 수 없다. 더군다나 과거 암페어가 탄생한 20세기 중반만 해도 양자역학 기술이 지금에 비해 열악했던 탓에 길이 단위 미터(m)나 힘의 단위 뉴턴(N)와 같은 단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자들은 암페어의 모호한 정의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자 1개의 전하, 즉 기본전하를 나타내는 상수인 e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단위 시간당 전하의 흐름'으로 전류를 정의하는 것이다.

새로운 암페어의 정의는 변하지 않는 기본상수(e)에 근거하기 때문에 모호성이 사라지고, 정의에 필요한 단위들이 기존 세 개에서 초(s) 하나로 간소화되어 매우 간단해졌다. 현재 e의 값은 수십 년의 연구 끝에 1.602 176 634 × 10-19 C으로 고정돼있는 상태고 특정 주파수를 가진 전자의 흐름을 만드는 일이 과제로 남아있는 상태다.

새로운 암페어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는 '단전자 펌프 소자'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단전자 펌프 소자는 전하를 띈 기본 입자인 전자를 외부 마이크로파에 의해 주기적으로 발생시키는 소자이다. 펌프가 지하수를 끌어올려 물을 만들듯이 단전자 펌프는 전자를 한 개씩 제어하여 주기적으로 발생시키는 역할을 한다.

■물질량 단위 몰(mol)
지금까지 몰의 정의는 12g의 탄소-12에 들어있는 원자의 개수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킬로그램에 직접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킬로그램의 문제점이 드러남에 따라 몰 또한 새로운 정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탄소-12의 12g에 있는 원자 개수를 세어보면 아보가드로 상수(NA)라는 기본상수가 나오는데, 측정방법에 따라 미세한 값의 차이를 보여 왔다. 이 말은 곧 아보가드로 상수를 정확하게 안다면 몰을 더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정의에 써온 탄소 원자는 배재하고, 불변의 척도인 아보가드로 상수를 명확히 규정해 척도로 활용하자는 게 이번 재정의의 방향이다.

새로운 몰의 정의를 위해 국제사회는 실리콘으로 완벽한 공을 만들어 그 안의 원자 수를 세고 이를 몰의 새로운 기준으로 삼자는 '아보가드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 결과 아보가드로 상수의 값은 6.022 140 76 × 1023 mol-1로 결정되었다. 이제 몰의 새로운 정의에는 더 이상 탄소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