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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사법농단' 현직판사 재판서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영장재판 자료 누설' 현직 법관들 첫 재판 
피고인 측 "혐의 부인"..검찰 측 "정치적 기소 아냐"

법원, '사법농단' 현직판사 재판서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사진=연합뉴스

“통상적인 공소장과는 많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힘이 많이 들어가 있는 공소장이다.”(유영근 부장판사)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 자료와 수사기밀 등을 누설한 혐의로 기소된 현직 부장판사들의 재판에서 ‘공소장 일본주의’가 또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날 재판부는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된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힘 많이 들어간 공소장"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20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재판에 넘겨진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와 조의연 서울북부지법 수석부장판사·성창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이들은 2016년 4월 전·현직 법관들이 연루된 ‘정운호 게이트’의혹이 불거지자 이를 은폐·축소하기 위해 수사기밀과 영장재판 자료를 빼낸 후 이를 정리한 보고서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신 부장판사가 법원을 겨냥한 검찰의 수사에 대응하기 위해 ‘법원에 접수된 영장청구서와 수사기록 등을 보고해 달라’는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아들여 당시 영장전담 판사였던 조·성 부장판사에게 관련 자료를 수집하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10차례에 거쳐 수집된 문건 9개와 수사보고서 사본 1부를 임 전 차장에게 전달해 공무상 비밀을 누설했다는 것이다.

이날 재판에서 세 부장판사 측은 다른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피고인들과 마찬가지로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란 검사가 기소할 때 제출하는 공소장에 법관이 예단을 가질 내용이나 서류·물건 등은 첨부·인용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신 부장판사 측 변호인은 “공소사실 이외에 다른 내용들이 배경이라는 이유로 ‘사법부 동향’ 등으로 기재됐다”며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반된 내용들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머지 두 부장판사 역시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되거나 공소사실이 불특정 됐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검찰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근거로 들며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은 범행 동기나 경위·전후과정 등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피고인들의 주장대로 법관에게 예단을 주어 심증의 형성에 장애를 주지 않는다”고 맞섰다.

그러나 재판부는 공소장에 대해 “피고인들과 직접 관련 없는 법원행정처 등 내용이 모두사실에 상당히 들어있다”며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반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극단적으로 말하면 ‘피고인들은 공모해’라는 내용으로 공소장의 1~10페이지까지 전부 요약된다고 생각한다”며 “저희 입장에선 힘이 많이 들어간 공소장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법농단 사건의 경우에도 공소장이 상당히 수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신속한 재판을 위해 공소장을 수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검찰에 주문했다. 이에 검찰은 해당 내용에 대해 검토하기로 했다.

■피고인들, 사실관계·공소사실 모두 부인
이날 피고인들은 검찰의 공소사실에 기재된 사실관계와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신 부장판사 측 변호인은 “형사수석부장판사 직책에서 당연히 보고해야 할 법관들의 비위사항을 상급기관인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것으로 사법행정상 필요한 행위거나 중요 보고 예규에 따라 이뤄졌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임 전 차장에게 보고한 것은 직무상 행위였을 뿐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다는 인식자체도 없어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조 부장판사 측 변호인은 “보고한 부분은 기관 내 보고이기 때문에 누설행위에 해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재판 기능에 장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성 부장판사 측 변호인 역시 “‘법관과 그 가족에 대해 영장이 청구되면 기각하라‘는 취지의 가이드라인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역대 영장전담 판사가 형사수석의 지시에 따라 중요한 사항을 처리한 후 처리결과를 보고한 것처럼 ’정운호 게이트‘도 통상업무에 따라 처리결과를 설명했을 뿐“이라고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반박했다.

한편 검찰은 '김경수 경남지사에 실형을 선고해 정치적으로 기소했다'는 성 부장판사 측이 제출한 의견서에 대해 "지난해 9월 성 부장판사를 조사한 직후 피의자로 입건했다"며 "올해 2월 24일 피의자로 소환 조사한 후 사정이 바뀐 것이 없음에도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근거 없는 의혹 제기이고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